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와 산업계 변화 속에서 철강•에너지소재•인프라 등 포스코그룹의 주요 사업에 대한 현안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진단해본다. 현재 가장 뜨겁고 중요한 이슈를 짚어보고, 분야별 전문가와의 심층 대담을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보자. 두 번째 대담에서는 한국 이차전지 산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극복할 방안과 미래 방향성을 살펴본다.
최근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은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는 한국 배터리 산업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전기차 수출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ESS(에너지저장장치) 분야에서는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 정책을 계기로 K-배터리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막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 그리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이차전지 소재와 배터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한국 이차전지 소재 산업이 마주한 위기와 기회, 그리고 포스코그룹의 전략적 대응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변곡점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고부가가치 영역에서의 확실한 경쟁력을 구축하는 전략이, 앞으로 한국 이차전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중국의 소재 경쟁력은 단순한 ‘가격 우위’가 아닌, ‘기술+공급망+정책’이라는 삼중 구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중국은 풍부한 내수시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으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 구조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물의 공급원 다변화, 정제•가공 기술 내재화, 해외 공급망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가 필요합니다. 포스코의 아르헨티나 리튬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전략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처럼 공급망 구조를 견고히 하는 전략이 국내 기업 전반에 확산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전기자동차의 수요 부진으로 사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전기차 수요가 다시 급증할 시점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중요합니다. 또한, 미국의 IRA, 유럽의 CRMA 등 공급망의 ‘출처’를 따지는 법안에 대응해, 비(非)중국 중심의 친환경 공급망 체계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이차전지 산업은 일반적으로 배터리 셀 제조사가 중심이 되는 산업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배터리의 성능, 안정성, 수명 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배터리 내부에 쓰이는 핵심 소재들입니다.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과 같은 소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셀 설계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배터리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원료, 양극재, 원통형 배터리 사진(왼쪽부터 리튬, 원통형 배터리, 니켈, 양극재, 코발트).
그런데 이 소재들은 단순히 ‘좋은 재료’이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터리 셀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지, 제조 공정과 얼마나 정밀하게 맞아떨어지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니켈 비중이 높은 양극재를 사용하면 충전 용량은 커질 수 있지만, 수명 저하나 안전성 문제가 뒤따릅니다. 실리콘이 포함된 음극재는 충전 용량은 좋지만, 충전과 방전 과정에서 부피 팽창이 일어나 이를 제어하지 않으면 셀 자체의 안정성과 수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 기업과 셀 제조사는 별개로 움직일 수 없으며, 기술적으로도 긴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재 공급사가 셀 제조사의 요구를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는 위치에 머물러서는,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셀 제조사가 요구하는 전극 밀도, 코팅 두께, 전해질 호환성 등에 대한 사전 공유 세션을 정례화하거나, 파일럿 단계에서의 공동 평가 체계를 운영하는 것도 실현 가능한 협력 방식입니다. 이는 소재 기업에게는 개발 방향성과 기술 투자의 확실성을, 셀 제조사에게는 맞춤형 소재 확보와 리스크 최소화를 보장하는 구조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균형 있는 협력 구조가 정착되면, 소재기업은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셀 제조사는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차세대 배터리를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됩니다. ‘함께 성장하는 구조’, 이것이 지속 가능한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핵심 방향입니다.
이차전지 산업이 글로벌 핵심 산업으로 빠르게 부상하면서, 이제는 소재 하나하나가 단순한 원재료를 넘어 ‘전략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의 성능과 안정성을 좌우하는 양극재와 음극재는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대와 맞물려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포스코그룹은 단순한 철강기업을 넘어,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중요한 주도권을 확보한 몇 안 되는 국내 기업 중 하나입니다.
포스코퓨처엠을 중심으로 한 포스코그룹의 소재 사업은 양극재와 음극재 양쪽 모두에서 사업 기반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니켈 비중이 높은 고성능 양극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흑연을 기반으로 한 음극재 분야에서도 글로벌 Top 10에 속하는 유일한 중국 외 기업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룹 차원에서 리튬, 니켈, 망간 등 핵심 광물의 확보와 이 광물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원하는 성분만 추출하는 정련•정제 능력 내재화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포스코그룹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소재-광물-공정’이 연결된 구조는 단순히 수직 계열화라는 형식적 의미를 넘어서, 공급망 전체를 그룹 안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닙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소재를 생산하더라도 광물 확보에서 불안정성이 발생하면 공급이 끊기거나, 원가가 급등하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강점을 더욱 확실한 경쟁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글로벌 완성차와 배터리 셀 제조사들과의 전략적 공급 계약 확대입니다. 포스코그룹이 확보한 소재 역량과 광물 자산은 전 세계 고객사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이를 토대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대하고, 기술 공동개발이나 장기 공급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를 넓혀야 합니다.
둘째, 친환경성과 기술 내재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이차전지 공급망 고도화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양이 많은 공급보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중국 이외의 자원을 활용해 생산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EU의 CRMA(핵심원자재법),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이후 이어지는 관세 정책처럼 공급망의 ‘출처’를 따지는 시대가 본격화되기 때문입니다. 포스코그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강점을 가진 기업이므로, 글로벌 인증 및 규제 대응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소재 사업에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산 LFP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 흐름과 맞물리며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고, 이에 따라 배터리 소재 시장 역시 새로운 방향 전환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한국 배터리 업계에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전략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포스코퓨처엠이 성능과 가격의 균형을 노린 LMR 소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닌 차별화된 기술력과 제품군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LMR은 에너지 밀도는 LFP보다 높고, 희귀금속 의존도가 낮아 원가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또, 재활용 측면에서도 LFP보다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기적으로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대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LFP보다 조금 더 좋은 성능을 원하지만, 고가의 하이엔드 배터리는 부담스러운 고객층을 타깃으로 하는, ‘중간 시장을 정조준’한 전략입니다. 이는 앞으로 배터리 수요가 다양화될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유효한 방향이라 판단됩니다.
결국 LMR과 같은 차별화 전략은 포스코퓨처엠의 기술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며, 이는 분명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주류가 LFP 쪽으로 쏠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LFP 대응 전략 또한 하나의 축으로 가져가는 이중 구조가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LFP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저가형 상용 전기차, 2륜차 시장 등에서 꾸준한 수요가 예상되는 만큼, 이를 ‘보완재’가 아닌 전략적 병렬 축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최근 한국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차전지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관련 특별법이 발의되고, 세제•R&D 지원 확대와 같은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흐름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정책적 선언과 실제 지원 간의 간극, 그리고 대기업 셀 제조사 중심의 제도 설계로 인해 소재 기업이나 후방공정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구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포스코퓨처엠은 한국 이차전지 산업에서 매우 드문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흑연계 음극재를 상업화해 공급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은, 단순히 생산 능력을 넘어 전략 자산에 가까운 기술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경쟁력 있는 기술조차 중국산 저가 제품의 가격 공세 앞에서는 시장 확대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까지 나서서 배터리 소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 부지 지원, 세금 감면 등 전방위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에서도 투자세액공제 직접환급•제3자 양도제, 생산세액공제, 정책금융 등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도 R&D 세액 공제나 금융 지원 중심의 간접적 방식에 머무르고 있으며, 특히 소재산업 특유의 장기 투자 구조와 낮은 수익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체계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선언적인 법안이나 단기적 지원보다는, 소재 기업의 기술력과 시장 가능성에 기반한 전략 품목 지정 및 구조적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R&D 지원을 넘어 기술과 수요를 함께 설계하는 수요 기반 정책 설계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 ESS(Energy Storage System)나 지자체 보급형 전기차 등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국산 소재 사용을 권고하거나, 실증 프로젝트를 통해 특정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파일럿 도입•평가하는 제도를 운용한다면, 기업들은 초기 판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술 개발에 더 과감하게 나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즉, 특정 기술을 보유한 소재 기업에 대해 국가 수요 연계 사업을 추진하거나, 공공조달•완성차 연계 실증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 시장 진입의 허들을 낮춰주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포스코퓨처엠은 음극재 분야에서 이미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정부의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한국은 배터리 후방공정에서도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국가 전략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책을 실현하려면, 선언이 아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행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신기술이 시장에서 대중화되기 전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실질적인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과 안정적인 수요 확보, 고객 신뢰가 뒤따라야 하고, 많은 기술이 이 과정에서 정체되거나 도태되기도 하지요. 최근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이 바로 이 고비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 산업계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먼저, 중국산 LFP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의 하위 가격대 세그먼트를 빠르게 장악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해온 국내 셀 제조사와 소재사들은 수요 위축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셀을 직접 만들겠다는 내재화 전략을 확대하고 있고, 미•중 간 공급망 재편도 계속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리스크에 노출되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흐름이 맞물리면서, 포스코그룹을 포함한 에너지 소재 기업들도 당장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 국면은 단기적인 정체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차전지 산업은 여전히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이며, 기술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기업에게는 오히려 재편기 속에서 시장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요 위축과 가격 경쟁이 이어질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고부가가치 제품군에 집중하고, 공급망의 신뢰성과 안정성이라는 ‘가격 외 가치’를 부각시키는 전략도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정체는 산업의 ‘한계’라기보다, 다음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견디느냐에 따라, 향후 5년, 10년 뒤의 산업 주도권이 결정될 것입니다. 포스코그룹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행력과 장기 전략 기조를 본다면, 이 조정기를 충분히 넘고, 오히려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는 역할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최근 이차전지 소재산업은 자동차 부품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중국의 풍부한 내수시장과 가격경쟁력, 정부의 투자와 기술 내재화, 고도화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선택과 집중으로 경쟁력을 구축하고 정부와 국회가 시장 가능성에 기반해 ‘국가 전략산업’에 걸맞은 일관성 있고 정책 설계로 지원한다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구축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편. 트럼프 행정부와 K-철강, 그 돌파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