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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은 지금도 달린다, 독도레이서 ‘한상엽 사원’

내 청춘은 지금도 달린다, 독도레이서 ‘한상엽 사원’

2012/12/28

모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청년이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한상엽’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독도 레이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2009년 17개국 30개 도시에서 독도와 대한민국을 알리고 돌아온 독도 레이서 1기 리더 한상엽 사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는 중에도 한상엽 사원은 자신의 독특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 밥을 반 이상이나 남겼는데요. 그래도 뭔가 부족한지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한상엽 사원으로부터 그만의 ‘행복한 청춘 만들기’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독도 레이서’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달리기’를 통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에요.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많은 국가를 방문해 마라톤을 주최하고 길거리에서 판소리, 태권도, 사물놀이 공연도 했습니다. 뉴욕 마라톤에서는 아예 옷을 갖춰 입고 달리면서 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지난 2009년 8월 16일에 미국에서 출발하여 9월 23일 캐나다, 11월 4일 과테말라, 12월 5일 코스타리카, 12월 10일 페루, 12월 22일 볼리비아, 2010년 1월 5일 아르헨티나 등 30개국 17개 도시를 순회하고 2010년 7월 3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독도 레이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군대를 제대하고 보니 같이 놀던 친구들 대다수가 고시 공부를 하고 있거나 1~2년 차 사회인이 되어 있었어요. 다들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죠. 저는 공부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회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 끝에 독도를 생각해냈습니다. 함께한 팀원들이 모두 달리기로 한가락하는 사람들이어서 ‘레이서’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구촌 달리기를 기획하게 된 것이 지금의 ‘독도 레이서’가 되었죠.

떠나기 전에는 어떤 준비를 했나요?

제일 중요한 건 돈! 돈이었어요. 물론 도와주신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세계 일주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과 합숙 생활을 하며 같이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그 와중에도 공연 레퍼토리를 위한 사물놀이와 판소리, 태권도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우선 처음으로 한 일은 홍보였어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도움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이지만 <박중훈 쇼 – 김태희 편>에 아주 잠깐 방송 출연을 했는데요. 덕분에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열었던 첫 마라톤에 2,000명이나 참가해주셨어요. 몇 초 등장만으로 이렇게 놀라운 파급력이 생길 줄 몰랐어요. 2월 22일에는 포항에서 독도로 들어갈 계획으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릴레이 마라톤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당시에도 KBS ‘휴먼다큐 사미인곡’에 독도 레이스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레이스 중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직도 가슴 아픈 일 중 하나가 바로 레이스 중에 친구를 잃은 일입니다. 김도건이라는 친구였는데 자기 차례도 아니면서 형들 피곤해 보인다며 씩씩하게 나가더라고요. 보통 레이서 앞뒤로 촬영차량이 같이 달리며 어느 정도 안전을 지켜주거든요. 때마침 새벽이었고 휴식을 위해 뒤에 있던 차량이 잠시 앞으로 빠져있는 상태였어요. 그때 교통사고가 난 거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활동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됐어요. 심적으로도 너무 많이 힘들었고요. 다들 좌절하고 있던 차에 죽은 아들의 꿈이 헛되지 않게 뛰어달라는 도건이 부모님의 말씀 덕분에 다시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해외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개만 얘기해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으로 마라톤을 주최했을 때예요. 미국의 LA라는 큰 도시에서 2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단 6명이 컨트롤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외교부 장관도 만났어요. 유명인사를 만나는 게 홍보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뉴욕에 있을 때는 <무한도전>팀한테도 연락을 했는데요. 방송 출연이 목표였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서 출연하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어요. <무한도전>팀뿐 아니라 세계 각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분들도 있었어요. 남아공월드컵 기간에는 남아공에서 직접 홍명보 감독님도 만나고, 캐나다에서는 팀원 중 한 명이 김연아 선수도 만났어요.

페루에서는 우리의 활동이 인상 깊다며 한 시인이 시도 써주셨어요. 당시에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뿌듯하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또 아르헨티나와 케냐에서는 현지인들과 합동 공연도 했습니다. 특히 케냐 고르고초에서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지낸 일주일은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고르고초가 현지어로 쓰레기라는 뜻인데 마을 전체가 쓰레기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데도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모두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독도에 도착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도건이 생각도 많이 났고요. 행사를 하면서 직접 독도 땅을 밟는다는 의미로 사람들의 발도장을 찍었는데 그 발도장을 전달할 때, ‘아, 우리가 정말 뜻깊은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도장들은 현재 독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요.

독도 레이스 이후 어떤 점이 변했나요?

사실 어릴 땐 건강도 나빴고 성격도 조금 어두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돌아온 후로는 모든 것이 행복하고 실제 성격도 많이 밝아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한 친구들 역시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친구들이 힘들다고 했던 사회생활이 저에게는 즐겁기만 합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제 갓 입사를 했으니 우선 열심히 일해야죠! 그리고 나중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고 싶어요. 워낙 사람 만나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니까요.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기업들이 인재를 채용할 때 소위 말하는 스펙보다 다양한 경험을 봤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많으니까요. 제가 공부만 했던 친구들보다 뒤지는 부분도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청춘의 사전적인 의미는 ‘10대 후반(後半)에서 20대에 걸치는, 인생(人生)의 젊은 나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와 있는 다른 뜻은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고 하는데요. 세상이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만물을 푸르게 만드는 것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청춘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으신가요? 지금도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으시다면 여러분은 성장할 기회를 가진 청춘의 한가운데 서 계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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