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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이야기 79] 신수철 前 상무, 통섭에 기반한 고유기술 개발로 세계 최고의 제철소 만들다

[남기고싶은이야기 79] 신수철 前 상무, 통섭에 기반한 고유기술 개발로 세계 최고의 제철소 만들다

2016/12/07

1973년 공채 5기로 입사한 신수철 전 상무가 신입사원 연수를 거쳐 처음 받은 보직은 조직개발실 설비자동화담당이었다. 이후 전산 쪽에서 오래 일했으니 이제는 직접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상사의 권유에 따라 2후판공장장으로 간 것이 1983년이었으니, 그는 입사 후 꼬박 10년을 전산 분야에서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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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포스코 창립과 건설, 조업 그리고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도움을 준 창업세대를 비롯한 대내외 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포스코의 참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포스코 창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기희생과 불굴의 정신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낸 대내외 인사들의 활약상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실>

 

– 제철소 ‘설비·사무·생산관리 자동화’에 기여··· 스마트한 제철소 만들어
– 가속냉각·연연속압연기술 개발 추진해 ‘프로세스 메털러지’ 실현 이끌어
– 가치 중심 작업표준서 일상화, 품질 트래킹 시스템 구축한 것도 큰 보람

 

신수철 전 상무 주요 경력  1948 서울 출생  1970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3 포스코 입사 연수원 연수과 교무계,  조직개발실 설비자동화담당, 설비전산화담당,  설비계획부 설비전산반  전산제어부 과장직무대리  전산제어부 제어기술실 총괄직  열연1부 2후판공장장, 열연기술과장  열연1부 차장  열연1부장, 후판부장  이사대우  상무(포항제철소 생산담당 부소장)  2002 포스콘(現포스코ICT) 사장  상훈 1989 제철기술상 대상  2002 국무총리 표창  2005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1973년 공채 5기로 입사한 신수철 전 상무가 신입사원 연수를 거쳐 처음 받은 보직은 조직개발실 설비자동화담당이었다. 이후 전산 쪽에서 오래 일했으니 이제는 직접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상사의 권유에 따라 2후판공장장으로 간 것이 1983년이었으니, 그는 입사 후 꼬박 10년을 전산 분야에서 보낸 셈이다.

“대학 전공이 기계공학이었지만 전산 분야에서 10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설비자동화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되었고, 나 스스로도 내가 기계공학도인지, 컴퓨터공학도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설비자동화담당에서부터 설비전산화담당, 설비계획부 설비전산반, 전산제어부 제어기술실 총괄직을 두루 거쳤으니 그럴 만도 했죠.”

포항제철소에 최초로 제어용 컴퓨터가 도입된 것은 2기 설비의 제강공장과 열연공장이었다. 이후 550만 톤 규모의 3기 설비부터는 모든 설비에 컴퓨터 시스템이 적용되었고, 3기 설비가 준공된 1978년에는 제철소 전체 컴퓨터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설비자동화란 한마디로 사람이 경험에 의존해서 운전하던 설비를 컴퓨터를 통해서 자동으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험이란 아무리 숙련도가 뛰어나도 편차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전날 술 한잔 한 것도 다음 날 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여기에 컴퓨터 시스템을 적용하면 수식 모델에 의한 정밀한 설정으로 운전의 정밀도가 향상되고 품질의 고도화와 안정화가 이루어집니다. 3기 설비는 설비계획 단계에서부터 자동화 시스템을 전 설비에 도입했고 미도입된 1, 2기 설비는 전반적인 개조, 증·보강을 통해 제철소 전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겁니다.”

당시 포스코는 국내 최초로 완벽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세계 최고의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세계 최고의 제철소가 되었다. 무려 10년에 걸쳐 설비자동화 분야를 맡아온 영향이었는지 1983년 후판공장장으로 보임된 후에도 그는 공장 자동화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당시는 전사적으로 설비자동화, 사무자동화 두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할 때였어요. 내가 후판공장장으로 가고 나서도 후판공장의 자동화와 시스템 개발이 다른 공장에 비해 유독 빠른 진척을 보였습니다. 이후 열연1부장, 후판부장을 거쳐 1998년 3월 생산부소장으로 임원이 되고 난 후에도 제철소의 생산관리 시스템의 효율화와 자동화에 진력하면서 자동화와의 유별난 인연을 이어왔어요.”

제철소는 모든 공학기술의 총화··· 여러 분야의 기술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는 제철소는 ‘모든 공학기술의 총화(總和)’로 이루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토목, 건축, 전기, 기계, 금속, 화공, 전산, 심지어는 요업(窯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학 분야가 어우러져 제철소가 건설되고 가동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것은 산업 현장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스스로 신기술을 습득하고 익혀야만 실무형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예를 들어 당시 제강공장에서는 LD 전로를 썼는데, 대학 금속공학과에서 이를 배운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설령 배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강의실 지식으로는 실무를 담당할 수가 없어 다시 공부를 해야 했어요.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기술은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인접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요구되었어요. 저는 공과대학을 다녔으므로 공학적인 사고의 바탕이 있었고, 공부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크게 어렵지 않게 인접 분야를 익힐 수 있었어요. 내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전산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예입니다.”

깊이 들어가면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학문의 융합은 이제 하나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이 또한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기술자들의 과제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제철소에는 대학 실험실이나 파일럿 설비로는 수행할 수 없는 실험 시설들이 널려 있고, 물어보면 언제든지 가르쳐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으므로 현장을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학습의 장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순수 자연과학 분야, 심지어는 인문, 사회,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제 통섭(統攝)은 거스를 수 없는 문명사적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에서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에 두루 능한 학자들이 즐비하고 정치, 경제, 사회를 폭넓게 공부한 인사들을 매스컴을 통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적 소양을 모두 갖춘 지식인들 또한 현대사회를 기름지게 하고 있어요. 나아가 예술 분야에서도 대중음악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듯이 이른바 크로스오버라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폭넓은 독서와 열린 마음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그는 후판공장장에서부터 생산부소장에 이르기까지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후판의 ‘가속냉각기술’과 열연의 ‘연연속압연기술’ 개발을 구상하고 추진한 것이 개인적으로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런 기술들이 개발, 축적됨으로써 현재 포스코가 추구하는 세계 최고의 제품 생산 시스템이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있을 때 구상하고 추진한 프로젝트였는데, 내가 자리를 옮긴 후에도 이를 중단하지 않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면서 끝내 성공하여 지금의 세계적인 기술로까지 발전시킨 후배들의 노력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치하를 보냅니다. 독창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철강 메이커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명심하여 앞으로도 도전적인 자세와 인내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후판가속냉각기술 개발 이끌어 ‘제철기술상 대상’의 영광을 안다

가속냉각기술(TMCP; Thermo-Mechanical Control Process) 개발은 그가 후판공장장 때 구상하여 열연후판기술과장 겸 차장 때까지 장기프로젝트로 추진했다. 고강도의 철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강 과정에서 탄소, 망간, 실리콘, 니오븀, 몰리브데늄 등의 고용강화원소를 다량 첨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분들이 많이 들어갈수록 강은 취약한 성질을 띠게 되므로 추가로 열처리 공정을 통해서 취성을 없애고 인성을 강화해야 한다.

“쇠는 합금 성분이 많을수록 용접이 잘 되지 않는 결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합금 성분을 줄이고 열처리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강도와 인성이 높은 철판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죠. 그때 일본과 일부 유럽 제철소에서 부분적으로 이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기술 유출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연구소와 설비 쪽 인력까지 참여시킨 가운데 ‘가속냉각 기술개발팀’을 발족했고, 제가 팀장이 되어 개발에 들어갔어요. 관련 문헌을 철저히 조사하고 일본과 유럽의 공장들을 빠짐없이 견학하며 관련 기술을 정리했습니다.”

그와 팀원들은 제강 성분 설계의 핵심포인트와 후판 공장의 가열로부터 최종 냉각에 이르기까지, 각 공정에서의 정밀한 조업기준 등을 만들고 냉각 설비를 포함한 추가 신규설비를 도입하고 설치했다. 그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술을 확립하게 되었는데 결국 3~4년의 지난한 연구개발과 시험조업 끝에 일반강과 거의 같은 소재로 고강도, 고장력 후판을 자력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기술의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열과 압연과 냉각을 거치는 동안 어떻게 하면 판 내 모든 부위를 목표 온도에 맞추어 균일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온도 편차는 곧 내부의 응력으로 남아 제품을 가공할 때 변형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작업조건은 강종과 사이즈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변수들을 컴퓨터 프로그램화하는 세밀하면서도 방대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속냉각 기술개발팀은 회사 역사 최초로 제철기술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아마도 이 기술의 혁신성은 물론 이러한 일련의 팀워크와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강(鋼)의 물성(物性)은 모두 제강 과정에서 결정되고, 압연에서는 사이즈와 평탄도가 결정된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강에서 수행하던 야금학적 컨트롤을 상당 부분 압연으로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른바 ‘프로세스 메털러지(Process Metallurgy)’가 실현된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제강에서는 일반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는 거지요.”

이어 그는 열연의 연연속압연기술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열연 소재인 슬래브가 상하 롤을 빠져나가면 제품은 필연적으로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머리와 꼬리 부분을 잘라버려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실수율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두꺼운 슬래브가 얇은 핫코일로 압연되어 길이가 크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뒷부분은 시간 지연에 따라 온도 강하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가속압연을 하게 되는데, 제어 측면에서 이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동시에 머리와 꼬리의 모양이 좋지 않고, 균열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롤이 깨지는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우리가 착안한 것은 머리와 꼬리 없이 압연 작업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앞 소재의 꼬리와 뒤 소재의 머리를 계속 붙여서 압연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슬래브 10장을 붙이면 첫 장의 머리와 마지막 장의 꼬리만 남게 되기 때문에 모두 18개의 머리와 꼬리가 없어지는 거죠. 문제의 핵심은 앞뒤 소재를 붙이는 기술이었는데, 일본의 신일철과 가와사키 등을 조사해 보니 그들은 조압연이 끝난 상태에서 레이저 용접이나 유도가열접합법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용접 과정에서 분진이 심하게 발생해 품질 저하와 환경오염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고온 상태의 철판을 자를 때 나이프가 소재에 접합된다는 사실이었다. 그와 팀원들은 조압연 이후 섭씨 1000도 이상으로 가열된 선후행의 두 철판을 겹쳐놓고 순간적으로 절단할 때, 철판을 순간적으로 접합시키는 장치와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소재를 접합함으로써 연속적으로 압연한 후 접합 부위를 정확하게 추적하여 잘라버리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연속으로 압연하니 머리와 꼬리가 한 개씩만 발생하고, 소재 한 개가 지나갈 때마다 새롭게 설정하고 조절하는 롤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안정된 조업 상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연연속압연기술 개발하면서 미세계측·위치추적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

바쁜 조업 와중에도 기술 개발 손 놓지 않은 후배들 노력에 깊이 감사

“문제는 접합 부위를 정확하게 추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미세 계측 기술과 위치 추적 기술을 별도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계측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부대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일본을 크게 앞지른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이었어요. 2006년 포스콘 사장으로 있을 때 기술 개발 완성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 보았더니 내가 개발에 착수할 당시에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고 있었어요. 이런 노력들이 쌓여 포스코가 세계 넘버원의 제철소가 된 거지요. 당장의 조업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현장에서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개발 중인 기술도 사령탑이 바뀌면 유야무야되기 일쑤인데, 내가 자리를 옮긴 후에도 끝까지 매달려 기어이 성공시킨 후배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부소장 재직 시 가치 중심의 작업표준서 작성을 일상화한 것도 보람 있는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종래의 작업표준이 설비 조작 순서의 기술로 되어 있었으므로 기계적인 작업의 반복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가치 중심 즉,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후공정, 궁극적으로는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가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표준서를 새로이 만들게 한 것이었다. 이는 직원들 스스로가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업무를 통해 자긍심을 고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제철소 전체와 고객사까지를 아우르는 품질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을 구축한 일입니다. 제강-열연-냉연을 거치는 프로세스에서 제품의 전폭과 전장을 미세 길이로 세분화해 주요 품질을 세분화된 위치별로 추적,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거였어요. 이렇게 함으로써 제철소 내부적으로는 편차를 감소시킬 수 있었고 고객사에는 우리 제품의 정확한 정보를 미리 알려 줄 수 있게 되었어요.”

그가 포스코ICT의 전신인 포스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2년이었다. 포스콘은 포스코의 계측제어 기술인력과 그들의 작업을 옮겨와 설립한 회사였다. 작업 대상이 포스코의 설비였기에 많은 직원들이 포스코에 나가 있었고 하는 일도 예전 설비자동화담당으로 일할 때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결국 포스코의 설비 및 운전의 자동화가 주된 임무였다.

“다시 계측제어라는 안경을 끼고 바라보니 제철소에는 아직도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이동기기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역 시스템, 선적 시스템, 언로더, 스태커, 소화차, 장입차, 토피도카, 구내철도 등은 운전자에게 많은 피로감을 안겨주는 이동기기로 다루기가 매우 위험한 대형 장비들이지요. 그래서 그쪽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해 이동기기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했습니다. 핵심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속도로 정확한 위치에 이동시키는 거였어요. 그때 천정크레인 등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이동기기는 거의 자동화했습니다. 제철소가 한층 스마트해졌어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중 철도 운전의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쪽에 마음을 두면서도 틈을 내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이런 일도 포스코ICT에 의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당시, 인천공항의 수하물 운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수주와 1차 작업은 이미 완료된 상황이었고 그가 갔을 때는 2차 작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포스콘은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승객이 내려 맡긴 짐을 찾아가는 데까지의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공항의 수하물 분실률은 0.01% 수준인데, 포스콘이 인천공항에 구축한 시스템의 분실률은 약 0.001%로,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든 놀라운 수치였다.

비철강 분야에 포스코 고유의 기술 적용해 성과 창출하는 모습 바람직···

통섭과 크로스오버 기반으로 앞으로도 비약적 발전 이뤄내주길 기대

“포스콘의 실력은 근본적으로 포스코의 실력입니다. 포스코가 철강이 아닌 이런 소프트웨어 분야의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철강으로 특화된 기술을 일반화해서 산업 전반에 유용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알파고로 널리 알려진 인공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소위 빅데이터(Big Data)인데, 그 속에는 엄청난 데이터가 있고 그걸 뒤지면 모든 해법이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분석 기술이 어우러지면 우수한 인공지능이 되는데, 이는 앞으로 생산 및 제조 기술에서부터 품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인류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포스코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실적을 낼지 현재로서는 전망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비해 항상 공부하며 새로운 설비,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부문, 연구개발 부문, 고객사와의 부단한 정보 교류를 통해 배우고 힘을 합쳐서 발전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세와 조직 공통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부하 직원을 교육하고 가치관을 격상시키면서 회사 발전의 주역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관리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입니다. 사람이란 일을 시키면 우선은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가르쳐주는 상사를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재욱 <시인·작가>

신수철 전 상무는 후판가속냉각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제철기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 신수철 전 상무는 후판가속냉각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제철기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신 전 상무와 동료들이 약 3년간 공을 들여 개발해낸 이 기술을 기반으로 포스코는 일반강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세스 메털러지(Process Metallurgy)’ 실현에도 기여했는데, 당시 이는 포스코 역사상 유래가 없는 획기적 기술로 평가 받았다.

 

 1997년 9월 11일, 포항 3후판공장 준공을 맞아 현장을 찾은 김만제 회장(①)을 신수철 당시 열연부장(②)이 영접하고 있다.

▶ 1997년 9월 11일, 포항 3후판공장 준공을 맞아 현장을 찾은 김만제 회장(①)을 신수철 당시 열연부장(②)이 영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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