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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이야기 61]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값진 경험 공유하며 포스코와 함께한 36년···초일류 와이어로프 기업으로 성장

[남기고싶은이야기 61]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값진 경험 공유하며 포스코와 함께한 36년···초일류 와이어로프 기업으로 성장

2016/01/28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준공된 1979년 2월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와이어로프(wire rope) 제조사인 고려제강은 포스코에서 생산한 선재(wire rod)제품을 시험재로 사용해 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재공장에서 처음 생산한 제품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훨씬 밑도는 품질 수준 때문에 도저히 조업 소재로 쓸 수 없었다고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은 털어놓았다. "먼저 소재를 섭씨 1000℃의 가열로에서 열처리한 다음 냉간(冷間) 상태에서 인발(引拔) 작업에 들어갑니다. 제철소에서 생산한 선재를 늘려서 필요한 굵기의 철사로 만드는 2차 공정인데, 일정한 모양의 구멍으로 금속소재를 눌러 짜서 뽑아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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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포스코 창립과 건설, 조업 그리고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도움을 준 창업세대를 비롯한 대내외 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포스코의 참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포스코 창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기희생과 불굴의 정신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낸 대내외 인사들의 활약상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실>

 

– 1980년 포스코와 첫 거래 시작한 이래 ‘아름다운 동행’ 이어와

– 국내 최초 와이어로프 제조사로 초기 포스코 품질 안정화에 기여

– 엔진밸브 스프링 와이어 등 시장 선도제품 공동 개발 잇달아 성공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준공된 1979년 2월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와이어로프(wire rope) 제조사인 고려제강은 포스코에서 생산한 선재(wire rod)제품을 시험재로 사용해 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재공장에서 처음 생산한 제품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훨씬 밑도는 품질 수준 때문에 도저히 조업 소재로 쓸 수 없었다고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은 털어놓았다.

 

"먼저 소재를 섭씨 1000℃의 가열로에서 열처리한 다음 냉간(冷間) 상태에서 인발(引拔) 작업에 들어갑니다. 제철소에서 생산한 선재를 늘려서 필요한 굵기의 철사로 만드는 2차 공정인데, 일정한 모양의 구멍으로 금속소재를 눌러 짜서 뽑아내는 거지요. 그래서 그 공정을 신선(伸線)이라고 합니다. 판재류로 치자면 압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생산한 철사를 꼬아서 와이어로프를 만듭니다. 그 공정을 연선(撚線)이라고 하는데, 초창기 포스코 소재를 가져다 쓰면 신선이 되지 않고 자꾸만 끊어져 버리는 거예요."

 

이를 테면 밀가루 반죽을 해서 통에 넣고 위에서 압력을 가하면 구멍으로 국수 가락이 길게 이어져 뽑혀 나와야 하는데, 토막토막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작업 방법이 아니라 반죽이 잘못된 것이 문제였다.

 

고려제강으로서는 어떻게든 포스코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켜 자국산 소재로 조업을 할 수 있어야만 앞으로 국제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실험을 계속했다. 한 개 코일(coil)을 100등분해서 하나씩 시험해 보기도 했다. 외형에서 성분에 이르기까지 전 코일에 대해 전수 검사를 하기도 했다.

 

인장강도, 둥글기, 표면흠은 물론이고 내부의 비금속 개재물까지 철저히 조사했다. 철의 탄소 함량이 높으면 그것이 골고루 분포되지 않고 한곳에 편중되는 편석(偏析)이 생기는데, 이런 것까지 면밀히 검사한 시험 자료를 모아 포스코로 보내고, 다음 소재가 오면 또 그렇게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1982년에 내가 시험 자료들을 모아서 포항제철소를 직접 찾아갔는데, 작고하신 김종진 전 포스코 사장께서 열연부장으로 계셨고, 신창식 전 부사장께서 품질책임자로 계셨습니다. 점심시간이 넘었는데도 두 분 다 식사도 못 하시고 일에 매달려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차마 볼멘소리를 할 수가 없어 자료만 넘겨주고 그냥 왔는데, 그렇다고 그분들이 내가 찾아간 이유를 모르셨겠어요. 당시 매월 40~50페이지의 품질 보고서를 포스코로 보냈으니, 고려제강은 포스코에 제일 까다롭고 성가신 존재였을 겁니다."

 

선재제품의 외형은 압연공정에서, 성분은 제강공정에서 결정되는데 당시는 제강공정에서 문제가 더 많았다. 그렇게 2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쓸 수 있는 선재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1983년에는 그동안 소재 공급을 100% 담당해온 신일철과 1년 동안 거래를 끊고 포스코 선재로만 조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고려제강은 포스코의 초기 선재제품 품질시험 공장이 되어준 셈이었다.

 

홍영철 회장은 이런 인터뷰 기회가 1~2년만 빨리 있었으면 부친인 홍종렬 명예회장께서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실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지금 99세로 명예회장으로 계시지만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945년 창업한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 생산을 개시한 것은 1962년이었다. 일본에서 선재를 들여와 월 100~200톤의 연선 조업을 시작했고 이후 1980년까지 신일철로부터 100% 소재를 공급받았다.

 

"당시에는 우리 제품을 일본 시장에다 팔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못 팔게 했어요. 1980년 일본 도쿄에 판매지점을 냈지만 영업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소재를 전량 공급받는 상황에서 그들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다가 포스코가 선재를 생산하면서 우리도 시장 개척이 자유스러워진 거지요. 지금 생각하면 포스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초기에는 품질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후 품질이 안정되면서 1981년에 국내 최초로 JIS(Japanese Industrial Standards·일본공업규격)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고려제강은 조업소재로 포스코 제품 70%, 신일철 제품 3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신일철 제품은 고려제강은 물론 포스코에도 경쟁회사 제품에 대한 정보 소스가 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재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포스코의 오늘을 보면 그야말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란 말이 실감 난다고 했다.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수요자라고 한다면 고려제강이 포스코 선재제품 품질 향상에 당연히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조업 중에 소재가 끊어지는 것은 이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혼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포스코를 많이 성가시게 했고, 포스코는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들었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었습니다. 어려웠지만 서로를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일했어요. 1980년대에 들어 보통 제품을 생산할 정도까지 품질수준이 향상되었어요. 물론 더 고급 제품은 어려웠지만요. 1980년대 초부터 타이어코드(tire cord)를 생산했는데, 타이어코드는 가늘면서 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비금속 개재물에 굉장히 엄격합니다. 당시 포스코 선재의 품질수준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고려제강은 연간 100여 만 톤의 고탄소강 선재를 생산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양질의 제품에 생산량은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중 70%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고급 스프링강이나 피아노 선재 생산 기술도 갖추고 있다.

 

"철강재의 탄소 성분은 흡사 요술쟁이와 같습니다. 탄소 함량이 높아야 철의 강도가 높아지는데 동시에 탄소는 철의 연성(延性)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업 중에 제품이 끊어지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강도와 연성, 모순되는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이 선재 조업의 최대 기술입니다. 소위 뮤직와이어(music wire)로 불리는 피아노 선재는 초고급 제품인데 10년 전에 생산이 중단되었어요. 전자악기의 등장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퇴장은 그보다 더 높은 신수요의 출현을 촉발하기 때문에 기술적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교량에 사용된 와이어는 거의 대부분이 고려제강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장교(斜張橋), 현수교(懸垂橋) 등 대형 교량 건설은 와이어로프 없이 불가능하다. 다리 양쪽 또는 가운데에 서 있는 버팀기둥에서 드리운 쇠줄이 강이나 협곡, 바다를 가로지르는 초중량물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서해대교에서 일어난 낙뢰사고 수습에 필요한 자재도 고려제강에서 공급했다.

 

"현재 전 세계에 1000만 톤 정도의 와이어 수요가 있습니다. 고려제강은 그 중에서 비드와이어(bead wire) 30%, 와이어로프 5%, 타이어코드 13%, 전체적으로는 7~8%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을 유지 또는 늘리기 위해서는 포스코 제품의 품질 안정이 절대적입니다. 1선재 초기에 품질 안정을 이룬 이후 2선재를 거쳐 3선재 중반까지는 우리도 포스코도 쉽게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소재가 모자라 계속 더 달라고 했으니까요. 3선재 후반부터 고급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스코가 제강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압니다. 정준양 전 회장께서 4선재 건설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들었는데, 포스코가 만약 4선재를 안했다면 고려제강은 지금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겁니다. 고려제강과 고려용접봉을 합해 연간 80만 톤 정도의 포스코 제품을 쓰고 있는데, 포스코의 4개 선재공장 중 하나는 우리가 쓰는 셈이지요."

 

홍영철 회장은 오랜 기간의 교류에서 체득한 느낌을 통해 포스코와 신일철 두 회사의 기업문화에서 많은 동질성이 발견된다고 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으로 상징되는 포항제철의 창업정신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신일철은 비록 그런 말을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공익적 성향이 짙게 느껴진다고 했다.

 

"철강업이라는 업종 자체의 속성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만약 포스코가 국가경제의 균형 발전 지원이라는 소임과 소재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고 이익 극대화에만 골몰했다면 국내 수요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을 구가할 수도 없었겠지요. ‘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철강재의 안정적인 공급기반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산업한국이 있는 것이지요. 건설, 조선, 기계, 자동차, 가전 등 그동안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철강 수요산업을 포스코가 든든하게 받쳐 주었습니다. 우리 고려제강도 그런 정신을 견지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한 거래처와는 거의 60년 동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3대째 신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신일철에서도 짙게 풍겨져 나옵니다."

 

고려제강은 현재 일본에 연간 10만 톤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소재가 원가의 40~60%를 차지하기 때문에 만약 포스코에서 소재를 공급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신일철로부터 조달했다면 일본 시장을 두드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고탄소(high carbon) 제품을 연간 100만 톤 생산하고 있는데, 일본 최고 회사의 연간 생산량이 15만 톤에 불과합니다. 인접국에 10만 톤 규모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회사 경영에 매우 유리한 여건이 됩니다. 문제는 중국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경쟁국인데, 시장을 유지하려니 마진을 낮추는 수밖에 없어요. 경합 소재의 출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고 연구소에서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플라스틱이나 복합소재 등이 중량에서는 매우 유리하지만 열에 취약하고, 일반화되기에는 철강의 10~20배에 이르는 가격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것들은 철강의 경합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능적 보완재로서 철강재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전 세계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는 핵융합발전소 건설이 2015년 연말에 끝나게 되는데, 이 프로젝트에 고려제강은 1억 달러에 이르는 소재를 공급했다. 바닷물에서 중수소를 추출해 헬륨으로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원자로가 원자폭탄의 원리라면 이건 수소폭탄의 원리지요. 핵융합 과정에서 무려 1억℃의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가둘 수 있는 물질은 세상에 없습니다. 모두가 녹아버리니까요. 그래서 물질이 아닌 자기장을 만들어서 열을 가두는데, 자기장을 만들 때 필요한 게 초전도체입니다. 거기에 우리회사의 초전도 와이어를 납품한 겁니다. 이런 소재는 경제성을 뛰어넘어 회사의 위상, 나아가 국가의 위상과도 관계가 되지요."

 

고려제강이 개발한 또 하나의 특수 소재로 자동차용 엔진밸브 스프링 와이어(engine valve spring wire)가 있다. 홍영철 회장은 엔진밸브 스프링 와이어가 철강제품 중 최고급 소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연기관(內燃機關)의 실린더에서 ‘흡입-압축-폭발-배기’의 프로세스가 반복될 때 엔진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스프링이 있는데, 바로 그 스프링의 소재인 것이다. 전기 점화로 폭발하는 가솔린엔진이나 압축열로 폭발하는 디젤엔진이나 폭발시의 실린더 내부 온도가 초고온 상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초고온 상태에서 열변형이나 기능성 저하를 일으키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는 소재가 요구되는 것이다.

 

"1995년에 다소 무모하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 세계적으로 이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스웨덴에 1개사, 일본에 2개사, 미국에 1개사 총 4개사밖에 없었어요. 거기에 고려제강이 덤벼들어 5개사가 된 겁니다. 공장을 지어놓고 포스코에 요구했지요. 당장 조업에 들어가야 하니 어떻게든 소재를 만들어 달라고. 만약 포스코에서 그걸 해내지 못하면 우리는 공장을 세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믿는 구석이 있었지요. 이번에도 포스코는 해낼 것이라는."

 

결국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해결되었다. 포스코와 고려제강의 동반 승리였다. 월 2000톤의 소량이지만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회사의 역량과 대외적 이미지에 직결되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수요가 제품 개발을 촉진하지만, 역으로 제품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 홍영철 회장의 견해였다.

 

"아마 포스코 기술진들 특히 실무진에서 엄청나게 고생했을 겁니다. 이걸 우리가 독일의 스프링 제조 회사에 팔면 그들이 스프링을 만들어 폭스바겐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그 소재를 만들 수 있는 철강사는 포스코, 신일철, 고베제강 3사밖에 없습니다. 생산업체와 수요업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술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때 양쪽 모두 윈-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홍영철 회장은 포스코와 오랜 기간 동안 거래하면서 박태준 명예회장의 완벽주의, 유상부 전 회장의 PI(Process Innovation) 추진 등이 인상 깊었다고 회고했다.

 

"작은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완벽주의는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철강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고 싶어도 잘 되지 않더군요. 후에 유상부 전 회장께서 1999년 PI를 추진하면서 ERP(전사적 자원관리)를 도입할 때는 ‘역시 세계 일류 기업이니 저런 것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포스코의 엔지니어링 능력이 정말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제철소를 기획-설계-건설-가동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 아니겠습니까. 엔지니어링 능력이야말로 현대 과학기술의 총화(總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도 우리의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부분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홍영철 회장은 오랜 세월 동안 고려제강의 까다로운 요구를 한 번도 안 들어준 적이 없는 포스코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면서 새해 덕담도 잊지 않았다.

 

"철강회사가 다른 데 손대서 성공하는 걸 못 봤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철강기업 포스코로서 국가경제를 이끌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포스코는 세계 최고, 최강의 철강회사인데 지금은 시황 때문에 다소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세기를 쌓아온 그 저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또 한번의 큰 도약을 위해 힘내시길 바랍니다."

 

우재욱 <시인·작가>

 

▶ 한국과 중국의 철강부문 기술협력과 정보교환을 위한 제1차 한중 철강협회위원회가 1993년 11월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정명식 철강협회장(포스코 회장) 등 12명의 한국철강업계 대표들은 한중 철강협회위원회 참석 후 서우강그룹, 안산강철, 바오산강철 등 중국 주요 철강업체와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다롄(大連) 등을 방문, 양국간 철강부문 협력확대방안을 모색했다. 왼쪽부터 김동진 베이징 사무소장, 이춘호 전무이사, 산업자원부 김무홍 사무관, 고려제강 홍영철 사장, 강원산업(現 인천제철) 정도원 부회장, 서정욱 철강협회 부회장, 정명식 철강협회장.

  

▶ 2012년 8월 포스코와 고려제강이 선재제품 거래누계 700만 톤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고려제강 임직원을 포스텍 포스코국제관으로 초청해 700만 톤 구매기념행사를 갖고, 장기 대량구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포스코 선재 고객사 중 최대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는 고려제강은 1979년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 가동 이듬해인 1980년 포스코와 첫 거래를 시작한 이래 1992년 100만 톤, 2003년 300만 톤, 2008년 500만 톤을 구매한 데 이어 2012년 700만 톤을 달성했다. 앞줄 왼쪽 다섯 번째부터 김병휘 상무, 고려제강 이태준 부사장, 신재철 상무.

 

▶ 권오준 회장이 2014년 8월 27일 고려제강 건천공장을 방문해 이이문 부회장 등 고려제강 임직원과 환담하고 "고려제강이 글로벌 No.1 와이어 메이커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포스코의 소재생산 역량 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고려제강 건천공장에서 플렉시블 파이프 와이어(flexible pipe wire) 제조공정을 둘러보고 있는 권오준 회장, 고려제강 이태준 사장, 박성호 전무, 고려제강 이이문 부회장(왼쪽 두 번째부터).

  

포스코 창립 50돌 특별기획 남기고 싶은 이야기 56편 이후 모아보기 1편부터 55편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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