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값은 공짜에, 들어오는 손님은 모두 VIP 대접을 받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바로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민들레 국수집’인데요.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대표는 2013년 포스코 청암상(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피플 人피플은 인간적인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민들레 국수집으로 찾아가 볼까요? : )
VIP를 모시는 민들레 국수집
Q. 민들레 국수집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나요?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 국수집은 지난 4월 2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고, 주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식사하러 많이 오세요. 평균적으로 150~200명 정도 찾아주시고, 예전부터 운영해온 ‘VIP’를 위한 민들레국수집’은 하루 400명 정도 식사하러 오십니다.”
Q. 10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요, 처음 왜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90년대 중반에 옆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기차길 옆 공부방’이라고 해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곳에 가봤다가 참 놀라운 광경을 봤어요. 공부방을 운영하는 단비 아빠 엄마가 얼마나 행복하게 보이는지, 그게 좀 샘이 나서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동네 근처로 와서 살아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죠. 그러다가 2000년도에 수도원을 나오면서 이 근처로 이사와 살고 그러다 보니 국수집도 열게 되었어요.”
Q. 대표님께서 봉사하시는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자립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사람은 정말 귀한 존재라서 조금만 도와주는 방법을 바꾸면 스스로 살 수가 있거든요. 사람이란 누가 도와줘서 잘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깨달을 때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옆에서 약간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것,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 처음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을 땐 우리 손님들이 당신 살기가 바빠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신경 쓰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져요. 겨울에 눈이 쌓이면 손님들이 식사하러 오셨다가 아무 조건도 없이 눈을 치워주고 쓸고 그렇게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Q. 조금 전 보니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식당 앞에 식자재들을 놓고 가시기도 하던데요.
“마음 착한 분들이 나누면서 스스로 계속해서 변하고, 그 다음 도움받는 분들도 스스로 나눠주고 생색내지 않는 분들의 마음 때문에 또 변하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변하기 시작하잖아요. 국수 한 그릇 주는데 어떤 마음으로 주느냐가 둘로 나뉘는 것 같아요. 국수 한 그릇을 ‘옛다 배고픈데 이거나 먹어라’ 하고 주면 국수 한 그릇 먹으면서도 가슴 속 상처가 10년도 더 갈 거에요. 그런데 그 똑같은 국수 한 그릇이지만 두 손으로 ‘드십시오’ 하면서 드리면 눈물 나게 고맙죠. 그렇게 사람이 고마움을 느낄 때 변하기 시작합니다.”
봉사를 소명으로 ‘낮게’ 임하며 살아온 서영남
Q. 포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큰 형님이 포항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셨어요. 그래서 가족이 포항으로 이사 가서 어릴 때 살았고요. 또 포스코가 공장을 세우기 전에는 그 자리에 수녀원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놀았던 추억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지금 94살이신데 지금도 전화 드리면 ‘착하게 살아라’ 하시며 당부하세요. 제 막내동생이 돌이 갓 지났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7남매를 혼자서 어렵게 키우시고도 화 한번 안 내시고 가난을 어려워하지 않으셨죠.
저희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릴 때 당신이 쌍둥이셨는데 쌍둥이 이모는 선네, 어머니는 후네 이렇게 부르셨대요. 그런데 한번도 선네 언니랑 싸워보지를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왜 못 싸웠는가 하면 누가 먹으라고 누룽지를 주면 반을 갈라서 조금 큰 것을 언니 주고, 조금 작은 것은 내가 먹고 언니도 그랬대요. 반 나눠서 조금 큰 거 양보하면 0.1% 덜 먹으면 싸울 일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 같아요.”
Q 교도소에 가시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있을 때부터 교도소에 다니려 애를 썼고, 학교 다니다가 수업 시간도 빼먹고 교도소에 쫓아다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잘못도 있지만, 사회구조의 잘못도 있거든요.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하면 하면 그렇게 돼요. 그 분들을 찾아가서 함께 어울리면 많은 것을 느끼고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세상으로 번져가는 희망의 민들레 홀씨
Q. 민들레 홀씨를 필리핀에서도 뿌리려고 준비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1988년 올림픽 때 필리핀 ‘라디오 베리따스’ 파견을 가서 2년간 살다 왔어요. 필리핀에 있을 때 힘들었는데, 필리핀 친구들이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따뜻하게 대해주던 것이 항상 가슴에 남아있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필리핀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사실 꿈같은 일이었어요.
그런데 2011년 제가 쓴 책(민들레국수집의 홀씨 하나)의 인세 중 10%를 ‘필리핀 가난한 아이들 공부하는데 보태자’하고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에 가서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필리핀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라고 하는 빠야따스(빈민촌)에 가서 가난한 아이들과 음식도 나누고, 다음부터 계속 도움을 주기 시작했죠. 작년부터 빠야따스에 가난한 아이들 104명 (초등, 고등학생) 1년 치 학비를 보냈고, 올해도 110명의 아이에게 장학금과 선물을 주었습니다. 포스코청암상 상금 덕분에 꿈꿔왔던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민들레 밥집’도 같이 나눌 수 있었죠. 늦어도 내년 3월 전에는 오픈할 수 있도록 해봐야죠.”
2013년 포스코청암상 ‘봉사상’의 주인공 서영남. 서영남 씨는 힘들 때마다 벽에 붙여놓은 김남주 시인의 ‘사랑’ 시구를 되새긴다고 합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그의 든든한 어깨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는 소명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국수집 그리고 민들레 홀씨가 되어 세상으로 번져갈 그의 헌신과 사랑에 아낌없이 찬사를 보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