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지역전문가로 선발돼 글로벌 전문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아세안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태국에서 활약 중인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장백석 과장을 뉴스룸에서 만나봤다.
l 동경을 넘어 도전에 나서다
동남아 대표법인 포스코사우스아시아를 거점으로 동남아 최초의 자동차강판공장 POSCO-TCS, 스테인리스 냉연 생산법인 포스코타이녹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태국’에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포항 압연설비부 장백석 과장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89년 입사해 30년간 기계 정비에 매진해온 그는 여러 유형의 설비 고장과 품질 이상을 해결하면서 일에 대한 보람과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랬던 그가 파트장직을 맡은 지 1년여 만에 태국행 비행기에 오른 까닭은 다름 아닌 ‘글로벌 현장 설비 전문가’라는 오랜 꿈 때문. 설비를 신예화하며 글로벌 엔지니어들과 자주 얼굴을 맞대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 근무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고. 그 관심은 곧 공부로 이어졌다.
“제철소 가동에 핵심이 되는 설비들은 주로 글로벌 엔지니어링사로부터 들여오는데, 설비가 정상 가동될 때까지 공급사 엔지니어들이 제철소에 주재하며 운영 노하우와 상황별 대응 메뉴얼 등을 전수해줍니다.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는 그들의 모습과 위상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한편으론 우리도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포스코기술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포스코기술대학 1기 출신으로 다년간의 현장 경험 위에 철강 전문 지식을 접목하며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써온 장백석 과장은 지난해 글로벌 지역전문가 모집에 당당히 합격했다. 포스코기술대학은 포스코가 현장직원의 자기개발과 평생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부로부터 정식 인가받은 2년제 전문학사 과정의 사내대학이다.
태국으로 떠나겠다고 결심한 뒤 그가 가장 우려했던 건 부족한 어학 실력이었다. 출국 전까지 어떻게든 기초 회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포항에서 태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원과 강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출국 전에 일정 수준의 어학 점수를 받아야 했는데 도움받을 곳이 없어 눈앞이 캄캄했어요. 포항에는 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제대로 된 어학원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포스코기술대학에 출강 중이셨던 한동대 황철원 교수님으로부터 태국인 유학생 프림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는 황 교수의 추천으로 알게 된 한동대 국제학부 재학생 프림에게 퇴근 후 주 2회씩 태국어 과외를 받았다. POSCO-TCS의 소개로 당시 방콕 주재직원도 소개받아 출국 전 준비사항부터 방콕에서 집 구하는 방법까지 꼭 필요한 정보들을 꼼꼼히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도착한 순간 처음 든 감정은 ‘좌절’이었다. 6개월간 배운 어학 실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현지 초등학생 수준의 책을 읽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잡았지만, 막상 배워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태국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다른 건 물론이고 성조를 잘못 발음하면 원래 뜻과 전혀 다른 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마냥 낯설고 어려웠지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따라 읽고 받아쓰다 보니 점점 입과 귀가 열리는 게 느껴졌다고. 어학 능력이 조금씩 늘면서 몰랐던 현지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럼 태국에서의 그의 일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l 방콕에서의 새로운 일상
장백석 과장의 숙소는 태국의 수도 방콕 중심부에 있다. 어학 수업이 이뤄지는 태국 출라롱콘 대학교 어학당과도 제법 가까운 거리. 보통 새벽 6시에 기상해 학교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그는 정규 수업 시작 전 한 시간 반 정도 개인 교습을 받았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난 뒤에도 개인 과외가 이어졌다고. 하루라도 빨리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어학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상이다.
“처음 두 달간은 정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하루에 10시간씩 대학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매일 현장에서 발로 뛰다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으려니 좀이 쑤실 법도 한데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학사 관리가 엄격한 명문대답게 어학 과정의 난이도 역시 상당한 편이었다. 종일 책상에 앉아 태국어와 씨름하며 보충수업을 꾸준히 해온 덕에 정규 수업을 문제없이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공부를 하며 친해진 어학원 친구들과 태국의 두 번째 수도, 아유타야에 다녀오기도 했다.
방콕 북쪽에 자리한 아유타야는 ‘불멸’이라는 뜻의 오래된 도시로, 약 400년간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였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대다수의 불상이 목이 잘려나가는 등 아유타야 왕국의 문화 유적이 크게 훼손됐는데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혹했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장백석 과장은 시멘트 하나 없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 탑도 인상 깊었지만, 잘린 석가모니상 머리를 감싼 보리수나무 뿌리를 보는 순간 저절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l 국경 너머 현장을 향한 열정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은 가공센터 POSCO-TBPC의 2,3공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품질관리부터 설비, 고객사 대응 등 가공센터 운영 전반에 걸친 기본 흐름을 배우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현지인이라 회의를 비롯한 업무 대부분이 통역을 거쳐 진행된다고. 의사소통에 난항을 겪을 때도 있지만 개선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에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과 가전회사들이 많이 진출해있습니다. 자동차강판과 가전강판의 수요와 시장 전망 그리고 고객사 니즈를 즉각적으로 캐치할 수 있는 곳이지요. 글로벌 지역 전문가에 선발된 만큼 현지 법인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나갈 생각입니다.”
현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겠단 포부 역시 진행 중이다. 스님을 회사로 모셔 한 해의 회사발전과 개인의 축복을 기원하는 ‘탐분’ 의식 때는 센터장님의 배려 덕에 맨 앞줄에서 스님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삼십 분간의 불경 설법 후 ‘시리몬컨(죄를 씻어주고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신도들에게 물을 뿌리는 의식)’을 받는 등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추억을 얻어 매일이 보람차다는 그. 마지막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동료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짤막한 메시지를 전해왔다.
“짧지 않은 회사생활을 통해 느낀 건 꾸준히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직원들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꼭 이뤄내겠다는 끈기로 도전한다면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