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 별들만큼이나 꿈도 많았던 소년은 이제 다 자라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과학을 사랑한다. E=mc2, 이 유명한 방정식을 개인 메신저 타이틀에 걸어둘 정도다. 이토록 과학에 진심인 그가 올해 포스코 기능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별, 과학, 기술. 모두 일맥상통하는 단어들이다.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은 궤도를 조금 달리해 세계적 철강기업 포스코 최고의 기능인, 명장(名匠)으로 실현됐다.
바로 이원종 명장이다.
“보통 명장이 되려면 몇 번씩은 고배를 마시곤 하시던데…”
“사실 저도 명장 제도 시행 첫해에 도전을 했었어요. 돌이켜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준비라곤 하나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 후에 한동안 잊고 지내다 올해 다시 도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 실질적으로는 첫 도전에 명장이 되신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요? 놀랍습니다.”
대답 없이 겸손한 미소만을 보여주는 이원종 명장이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포철공고를 거쳐 처음 포스코와 인연을 맺은 때가 1985년. 당시 명칭으로 ‘전산제어부 압연제어정비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명장이 된 지금이야 여러 일에 능통하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
이원종 명장의 ‘시작’은 어땠을까? 막 일을 배우기 시작했던 시기에 대해 물었다.
“처음 포스코에 입사해 전문기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때가 직장생활 최고의 고비였습니다. 뭔가를 모른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죠. 지금은 인터넷도 발달했고, 회사 내부에서 축적해 공유하는 기술 자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입사했을 무렵만 해도 뭐든지 모르는 것은 선배 개인이 경험을 토대로 알려줘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선배에게 물어야 했는데, 정작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게다가 선배에게 묻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시절이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았던 그에게 어려운 과제들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처음 입사해서 포항 2후판에 배치됐는데 마침 그때가 가속냉각설비를 처음으로 도입한 시기였습니다. 가속냉각은 TMCP강(Thermo Mechanical Control Process)*을 제조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기술입니다. TMCP강은 선박용 강판의 대표주자로 용접성이 매우 중요한데, 그 용접성을 높여주는 기술이 바로 가속냉각입니다. 당시 고졸사원들은 주로 하드웨어 정비 쪽 업무를 맡고 대졸사원들이 소프트웨어 쪽을 맡았는데, 저는 처음으로 현장제어에 필요한 DDC(Direct Digital Control)**, 즉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제어에 입문한 거죠.”
지금은 PLC(P rogrammable Logic Controller)***로 하는 현장제어 DDC. 이걸 독학으로 풀어가려니 이원종 명장은 죽을 맛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시절을 회상할 정도다. 그러나 어려웠던 만큼 자랑스러운 성과도 있었다. 1989년 가속냉각 TMCP강 제조기술로 ‘제철기술상 대상’ 단체상(DDC 부분)을 수상한 것이다. 입사 3년차였던 1988년, 그는 프랑스에서 DDC제어 연수를 받으며 제어인으로서 본격 출발했다.
*TMCP(Thermo Mechanical Control Process) 강: TMCP 제조법으로 생산하는 선박 건축용 극후판 강재
**DDC(Direct Digital Control): 어떤 접점이나 스위치를 특정한 위치에서 신호의 형태로 직접 제어하는 방식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산업 플랜트의 유지관리 및 자동 제어 및 모니터링에 사용하는 제어 장치
1991년, 그는 1냉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김재복 기성이 그에게 “이제 너 자신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라며 적극 추천해 옮긴 자리였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일복이 터졌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알고보니 제가 1냉연으로 옮긴 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하던 압연기 담당 직원이 사직을 해서 빈 자리가 생겼던 거죠. 그 직원의 사직 사유는 ‘돌발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서’였다는 겁니다.”
도대체 돌발은 왜 그렇게 많았던 걸까? 돌발이 많은 자리는 바로 형상제어 부분이었다. 압연은 쉽게 말하면 원하는 두께로 철판을 롤(roll)로 눌러서 뽑아내는 작업이다. 물론 그냥 눌러서 되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두께로 만들어내야 하고, 표면도 울퉁불퉁하면 안 된다. 그러려면 상황에 따라서 위치별로 압력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면 불량이 발생해 돌발로 이어진다. 결국 이 제어가 원만하게 되지 않다 보니 돌발이 그토록 많았던 것.
“설비를 공급한 곳이 독일 회사였는데 기술자가 원인을 찾다 찾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독일로 가버렸습니다. 설비공급사가 찾아내지 못한 원인을 우리가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문제가 일어나는 부분의 프로그램 소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제어를 하다 보면 갑자기 출력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출력이 갑자기 떨어지면 그 순간 판파단이 났다. 그런데 제어출력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은 설비공급사가 포스코에 소스를 제공하지 않고 일종의 ‘블랙박스’로 관리하는 부분이었다.
“출력 저하의 원인인 블랙박스 부분에는 손을 댈 수가 없고,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 줄 독일 기술자는 떠나버렸다…난감한 상황이었죠. 고민을 하던 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더군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불가지만 현상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떨어지는 순간에 블랙박스 외부에서 보완해 줄수는 있다는 겁니다.”
이원종 명장은 이전 값을 비교해서 출력이 떨어질 경우 떨어진 출력값을 무시하고 이전 값을 사용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블랙박스 외부에 추가했다. 당연히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됐다. 이거야말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경험을 밑거름으로 그는 ‘압연기 두께제어 및 형상제어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시도 때도 없는 돌발 때문에 늘 현장으로 달려가셔야 했을 텐데요. 가족들도 힘드셨겠어요.”
“딸들에게 살가운 아버지라고는 못하겠습니다. 특히 아내에게는 많이 미안합니다. 돌발 상황으로 불려 다니는 게 일인지라, 자다 일어나서 나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도 자다가 깨곤 했는데, 그런 일상이 많이 불편했을 거예요.”
물론 결혼하면서 그 역시 가정을 위해서 노력한 부분이 있다. 가족을 1순위로 하고, 정말 좋아했던 취미들도 깨끗이 포기했다.
“제가 프랑스 연수를 다녀왔다고 했잖아요. 당시 몽블랑을 잠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스키 하나에 남녀가 함께 타고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하늘로 확 날아올라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걸 봤어요. 어찌나 멋있던지,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포항에 돌아와 찾아보니 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나중에 취미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도 함께 즐겼지요. 그렇지만 위험한 취미이다 보니 결혼하고부터는 가족을 생각해서 그만뒀습니다.”
그의 삶을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고, 그 역시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쉴 새 없는 돌발 상황도 잘 넘어섰던 것이 아닐까?
이후 이원종 명장은 후판, 냉연에 이어 기능인의 삶으로서는 3막에 해당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기강판으로 자리를 옮겨 보직이 ‘전산’에서 ‘전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기강판에서 그가 담당하게 된 것은 3ACL(Annealing & Coating Line)*, 즉 무방향성전기강판공장의 PLC였다. PLC란 무엇일까? 명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PLC란, 앞서 간단히 설명한 대로, ‘Programmable Logic Control’의 약자입니다. 산업 플랜트의 유지관리 및 자동 제어, 모니터링에 사용하는 제어 장치죠. 이는 순서 제어인 시퀀스 제어와 다르지 않습니다. 순서에 따라 어떤 동작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게 제어를 하는 건데요. 사실 이런 시퀀스 제어는 1980년대 말에도 이미 존재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하드웨어 사양이 받쳐주지 못했죠. 지금 같은 제어를 당시 하드웨어로 한다면 어마어마한 공간이 필요할 겁니다.”
이런 제어는 과거에는 케이블과 릴레이를 사용해 이뤄졌는데 하드웨어 발전에 따라 전자적, 집약적으로 변해 현재의 PLC로 발전했다. 이제 제어가 필요한 산업현장에서 PLC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PLC의 하드웨어와 OS는 설비공급업체로부터 사오면 되는데, 그 애플리케이션은 현장에서 직접 프로그래밍 해야 한다. 물론 프로그램도 사올 수는 있지만, 그러면 각 현장에 딱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용을 쓰면서 대외 의존도까지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PLC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H/W, S/W 설계기술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하드웨어를 도입했을 때, 여러 하드웨어를 서로 어울리게 배치하고 연결해야 합니다. 또한 프로그램 자력개발을 위해서는 설비운영에 맞는 프로그램의 설계기술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효율적으로 융합하고 합리적 비용으로 도입할 수 있지요.”
*ACL(Annealing & Coating Line) : 소둔 및 코팅설비
그는 이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 공부의 목표는 PLC의 독립, 프로그램 자력개발이었다. 이번에도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노력 끝에 관련 기술들을 확보해내고야 만다. 그렇게 보유하게 된 기술이 바로 ‘PLC H/W, S/W 설계기술’ ‘냉연, STS냉연, 전기강판 라인 제어기술’ ‘PLC를 이용한 장력제어 및 소둔로 제어기술’ 등이다.
“PLC를 이용한 장력제어 및 소둔로 제어기술이란 것도 발상의 전환으로 확보한 기술입니다. 일을 좀 쉽게 해보자 해서 꾀를 부렸다고나 할까요? 소둔로는 입측에서 장력제어를 하는데 소둔로 출측으로 나올 때는 장력이 높게 형성되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고품질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뽑아내려면 출측 장력을 낮추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입측 제어로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어떤 발상의 전환이었을까? 이원종 명장은 출측 속도가 전체 라인(Line) 속도 기준값으로 속도 변경이 되지 않는 설계사상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여기에다 장력 제어를 추가해, 입측과 출측에서 동시에 소둔로 장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이원종 명장의 제어방법에 대한 유연성으로 포항제철소는 고품질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생산 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발상을 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기까지, 실수도 했다.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바꿔말하면 ‘모르는 것은 문제’다. 이원종 명장도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전기강판부에서 처음 전기 업무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소둔로에 많은 모터 중 하나를 교체해야 해서, 제가 맡아서 작업을 했는데요. 제가 제어만 하다보니 전기나 모터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보기에 다 똑같은 모터였기에 제대로 교체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원인 모를 품질불량이 자꾸 발생하는 겁니다. 한동안 그러다가 드디어 원인을 밝혀냈는데 제가 바꾼 모터 때문이었습니다. 외관상 다 같은 모터처럼 보였지만 ‘기어비’가 다른 모터였던 거죠.”
“기어가 붙어있는 모터였던 모양이죠?”
“네, 기어와 모터가 일체형이었고, 그 기어에는 비율이 있는데, 바꾸기 전 모터와 바꾼 모터가 비율이 달랐던 겁니다. 나중에 공장장님께 정말 호되게 혼이 났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네요. 덕분에 공부에 더욱 열중하게 됐죠.”
“명장께서 네트워크 설계 및 진단기술을 체계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제어를 하려면 일단 현장에서 어떤 정보가 들어와야 하고, 또 제어하는 곳에서도 어떤 정보를 줘야겠지요. 그러러면 신호를 받고 보내는 ‘통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통신을 하려면 여러 현장센서로부터 PLC가 있는 전기실로 케이블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고, 또 필요한 제어신호가 다시 케이블을 통해 각 현장 구동부로 보내져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각 센서와 PLC를 연결하려면 어마어마한 물량의 케이블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은 통신선이 센서들 주변으로 지나게 하고, 현장 센서들로부터 입력, 출력을 그 통신선에 연결하는 단순한 네트워크 방식을 활용합니다. 물론 이 방법도 단점이 있습니다. 통신선에 노이즈가 생기기 쉽고 통신선에만 문제가 생겨도 결국 전체 센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모두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죠. 사람의 경추 신경에 이상이 생기면 몸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통신선이 중요합니다.”
이런 방식을 필드-버스 통신(Field-Bus)이라고 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포인트는 바로 이 통신을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게 없다 보니 안정화를 위한 기준을 만드는 데 집중을 했고, 차차 그에 따른 네트워크 진단 방법을 체계화해나갔다고.
“이제는 필드-버스 통신망을 설계하는 것, 구성한 통신망에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 이상 개소와 원인을 진단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또 기존의 통신망을 더욱 안정적인 망으로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고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의 자리에 올라선 이원종 명장.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숙제가 무엇이냐 묻자 ‘후배 양성’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 그가 근무하는 EIC기술부의 공정자동화섹션 산하에는 PLC전문파트가 만들어져 있다. 이 파트 역시 기술 전수와 후배 양성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그는 이 조직으로부터 PLC 전문기술을 습득해 현장의 니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는 한편, 이 조직에서 배운 인력을 또다시 현장으로 보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일종의 PLC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다.
“어려움은 많습니다. 현장에서는 숙련된 인력을 보내달라고 하지만, 이 파트에 들어오는 인력이 현장의 요구를 충족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더 노력하고 또 고민해야 하겠지요.”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원종 명장의 각오에서 그가 기술 전수에 얼마나 진심인지, 왜 그토록 열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후배들이 회사에 정을 잘 못 붙이고 특히 정비 쪽은 이직률이 꽤 높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많이 들립니다. 왜 그런지 고민을 많이 해보고 내린 제 나름의 결론은 ‘일이 재미가 없어서!’라는 겁니다. 일이 힘든 건 문제가 아닙니다. 재미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정비 업무가 재미있어질까요? 제 경우에는 제가 생각한 방법으로 설비를 개선해 생산성과 품질에 성과가 있었을 때 정비가 재미있어졌습니다. 기술을 잘 전수해서 후배들이 업무에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재미있는 정비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천문학자를 꿈꾸던 소년은 우주의 비밀 대신 현장의 문제를 푸는 명장이 됐다. 그가 후배들에게 솔선수범하며 보여줄 정비의 신세계와 해답, 그것은 아마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경이로울 것이다.
[포스코의길, 명장의道] 포스코명장 특별인터뷰 모아보기
1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2편 : 광양제철소 제강부 조길동 명장
3편 : 포항제철소 열연부 권영국 명장
4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신승철 명장
5편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김차진 명장
6편 : 광양제철소 EIC기술부 김성남 명장
7편 : 포항제철소 후판부 이영춘 명장
8편 : 광양제철소 화성부 김제성 명장
9편 :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서광일 명장
10편 : 포항제철소 제강설비부 남태규 명장
11편 : 광양제철소 제선부 배동석 명장
12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명장
13편 : 저탄소공정연구소 한병하 명장
14편 : 광양제철소 압연설비부 김종익 명장
15편 : 광양제철소 도금부 손병근 명장
16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손광호 명장
17편 : 광양제철소 열연부 김용훈 명장
18편 : 포항제철소 STS제강부 김공영 명장
19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정규점 명장
20편 : 포항제철소 제강부 오창석 명장
21편 :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이정호 명장
22편 : 포항제철소 제선부 김수학 명장
23편 : 포항제철소 제강부 이영진 명장
24편 : 광양제철소 제강설비부 이선동 명장
25편 : 포항제철소 안전방재그룹 서정훈 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