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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을 떨게 한 신비의 무기, 다마스쿠스 검

십자군을 떨게 한 신비의 무기, 다마스쿠스 검

강창훈 작가 2016/08/24

포스코리포트. 강하면서 유연하게, 지진을 이기는 철. 과거에도, 현재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철에 대한 이야기를 각 분야 전문가가 들려 드립니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인 철의 가치를 좀 더 특별하게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서 바라본 철에 대한 이야기. 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시죠!

l 글 철의 시대 저자 강창훈

 

l 이슬람 영웅, 살라딘의 다마스쿠스 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시내 중심가에는 말 탄 전사의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병사들과 함께 전방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을 달리는, 영웅의 기상과 비장감이 철철 넘치는 이 장군의 이름은 바로 중세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 살라딘이다.

다마스쿠스의 살라딘 동상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다마스쿠스의 살라딘 동상

살라딘. 그 이름이 좀 낯설 수도 있겠다. 몽골 세계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 칸만큼 명성을 얻은 건 아니지만,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무척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이다. 유럽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11~13세기에 200년 동안 치열한 각축을 벌인 십자군전쟁 때,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편에서 지켜낸 영웅이기 때문이다.

살라딘 초상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살라딘 초상

그런데 이 살라딘의 동상을 볼 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살라딘이 날 끝을 앞으로 향하게 한 채 오른손에 쥐고 있는 칼이다. 보기에는 그저 그런 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자루의 칼에 철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칼의 이름은 다마스쿠스 검. 다마스쿠스 검의 자취를 따라가며 철의 역사의 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l 우츠 강철로 만든 무적의 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델리의 철 기둥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델리의 철 기둥

우선, 검 이름에 왜 시리아의 수도 이름이 붙었는지부터가 궁금하다. 사실 이 검의 태생지가 다마스쿠스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이 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저 멀리 고대 인도에 도달하게 된다.

잠시 위 사진 속 기둥을 보자. 높이 10미터에 무게 6톤짜리 철로 만든 기둥이다. 녹이 많으 슬지 않은 상태로 보아 최근에 만들었구나 싶겠지만, 사실 지금부터 1,700여 년 전 인도 굽타 왕조 시대에 만든 것이다. 학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며 성분 조사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확실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델리의 철 기둥’이라 불리는 이 기둥은 바로 ‘우츠 강철’이라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우츠 강철은 망치로 쳐도 날이 무뎌지지 않아 날카로운 검을 만드는 데 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렇게 우수한 소재로 만든 검이 인도에만 머물렀을 리가 없다.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서아시아, 북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리고 우츠 강철로 만든 검은 서아시아의 다마스쿠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도 검’이나 ‘우츠 강철 검’이라 하지 않고, ‘다마스쿠스 검’이라고 부를까? 다마스쿠스는 서아시아에 위치한 무역 중심지였다. 이 도시를 통해 우츠 강철 검이 사방으로 수출되었는데, 수요가 많아져 물량이 부족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기원후 300년 무렵부터는 상인들이 장인들을 고용해 직접 검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다마스쿠스 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낳고 길러준 것은 인도지만, 유명세를 타게 해준 것은 다마스쿠스였던 셈이다.

 

l 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다마스쿠스 검

다마스쿠스의 물결무늬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다마스쿠스의 물결무늬

다마스쿠스 검은 제작 방법부터가 남달랐다. 검 날 부분은 강도가 균일하도록 탄소를 고루 섞어 주어서 민무늬인 반면, 몸통 부분은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탄소의 분포 차를 크게 하기 때문에 무늬가 선명했다. 그래서 이 검을 보고서 무늬가 마치 바람 부는 연못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 같다고 묘사한 작가도 있었다.

이렇게 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다마스쿠스 검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무기였고, 바로 이 검을 탐하다가 비운의 운명을 맞은 남자가 있다. ‘무타왁킬’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8~13세기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였다. 그는 당시 인도 남부에서 제조되는 다마스쿠스 검의 명성을 듣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막대한 돈을 주고 이 전설의 무기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기르라는 부관에게 검의 보관을 맡겼는데, 하필이면 바기르가 반란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무타왁킬은 바기르에게 살해당한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다마스쿠스 검으로 말이다!

 

l 십자군 원정대를 누른 전설의 무기

리처드 1세 동상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리처드 1세

다마스쿠스 검의 명성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전해진 것은 십자군 전쟁 때다. 십자군의 두꺼운 갑옷도 뚫고 그들의 검마저도 단칼에 잘라버린 것이 바로 살라딘 군대의 다마스쿠스 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검이 대단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강하고 날카로운 것은 기본이고 가볍고 날씬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라딘의 동상을 보면서 칼이 어딘지 모르게 왜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세계를 호령한 영웅이 쓰던 거라고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무엇이든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살라딘 군대는 무거운 검을 사용한 십자군에 비해 기동성에서 훨씬 앞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십자군을 이끈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자기 검을 자랑하자, 살라딘은 비단을 위로 던지고 떨어지는 지점에 다마스쿠스 검을 두었는데 비단이 두 조각이 났다는 이야기다. 악마가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는 걸 감안하면 위의 에피소드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다마스쿠스 검이 엄청난 무기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유럽의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유럽 기독교 세계의 침입을 막는 데 성공한 셈인데, 그 중심에는 영웅 살라딘의 군대를 천하무적으로 만들어준 다마스쿠스 검이 있었던 것이다.

다마스쿠스 검은 이후에도 세계의 전장을 누볐을 터인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 약 250년 전 제작기술은 실전(失傳) 되었고 그 이후로는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복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철로 온갖 대량살상무기를 다 만드는 21세기인데도 복원 불가라니. ‘마치 바람 부는 연못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 같은’ 다마스쿠스 검의 무늬를 다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 포스코리포트는 해당 분야 전문가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포스코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강창훈. 고려대 동양사학과 대학원 졸업, 역사책 기획자 및 역사교양서 필자, 제5회 창비 청소년도서상 교약기획부문 대상, 주요 저서:'철의 시대','중국사 편지','일본사 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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