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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컨테이너

낭만 컨테이너

포스코리포트 낭만 컨테이너. 과거에도, 현재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철에 대한 이야기를 각 분야 전문가가 들려 드립니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인 철의 가치를 좀 더 특별하게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서 바라본 철에 대한 이야기, 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시죠!

l 글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이경훈 교수

l 컨테이너 빌딩, 도심 속으로

커먼그라운드의 저녁 모습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커먼그라운드

컨테이너 빌딩이 도심으로 침투하고 있다. 대형 선박에 실려 대양을 가로지르거나 트럭으로 대륙을 횡단하고 있어야 할 컨테이너가 도심에 무더기로 모여 건축을 만드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공사장의 임시 사무소 정도로 쓰이던 것이 건국대 근처의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나 청담동 쿤스트할레 같은 첨단 유행을 상징하게 된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주철 기둥 건축물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주철 기둥 건축물

이를 맨해튼에서 가장 낭만적인 예술의 거리로 불리는 소호의 사례와 비교해 볼만하다. 애초에 소호는 공장지대로 건설되었다. 시청에 근접한 중심지였지만, 늪을 매립한 지역이어서 개발이 늦어졌다. 그곳은 봉제공장 같은 경공업 지역으로 요즘 아파트형 공장과 같은 건물들이 지어졌는데 당시로는 신재료였던 주철기둥으로 지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l 뉴욕 소호의 독특한 공간적 배경을 이룬 주철(Cast-iron)

건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고 철기시대가 시작된 것도 수천 년이 지났지만 건축에 철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그러니까 기껏해야 백오십년 전 쯤 부터다.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은 못이나 장식 등 보조적이거나 소극적으로 쓰인 게 전부였다. 시작은 역사가 오래된 주철부터였다. 주철(Cast-iron)은 우리가 흔히 무쇠라고 부르는 것으로 탄소 성분이 많아 돌처럼 단단하기는 하지만 휘는 힘에는 약한 금속이다. 그래서 기둥 이외의 건축 재료로 쓰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많다.

주철 기둥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주철 기둥

19세기 중반 철의 생산과 가공이 발달하면서 형틀을 이용해 쇳물을 부어 만들 수 있는 주철의 특성이 건축에 대대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일일이 돌을 조각해 만드는 것보다 훨씬 날렵하고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을 가진 기둥을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가 좋았는데 유럽에 비해 숙련된 석공이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곧 우편주문으로도 판매할 정도로 유행했지만 아무래도 낯선 재료이고 진짜 돌보다는 가치가 떨어지는 일종의 모조품이라는 관념 때문에 그 쓰임새는 조심스러웠다. 따라서 품위 있고 중요한 건물보다는 우선 소호의 공장지대에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뉴욕 소호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뉴욕 소호

이후로 휘는 힘에도 강한 강철이 대량생산되면서 주철의 사용은 단순한 장식적인 것으로 물러나게 되고 더 이상 건축 재료로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멈춰진 듯 맨해튼에서도 유일하게 소호에서만 주철 기둥을 볼 수 있는 지역이 되었고 그로부터 백년이 지나 주철로 지어진 소호의 건물과 거리는 예술가들에게는 축복의 공간이 되었다. 천장이 높고 탁 트인 데다 임대료까지 저렴한 공장들은 하나둘씩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로 변해갔다.

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팔던 1층은 갤러리와 카페로 변했는데 그 중에는 리오 카스텔리나 사찌 같은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을 이끌던 세계적인 갤러리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얻어주고 유명한 비평가들을 동원하여 카페에서 토론하며 작업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었는데 이것이 ‘추상표현주의’라고 부르는 미술의 사조가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소호는 가장 세련되고 낭만적인 지역이 되었는데 주철기둥 건물이라는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l 대량생산 시대의 부산물 컨테이너,  스타일이자 건축 목적이 되다

이를 설명하는 복잡다단한 이론이 있지만 건축에서는 구조와 장식의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건축에서 장식이라 부르는 것은 공예 등 다른 예술과는 달리 전 시대의 구조 또는 생산방식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석재 기둥에 나타나는 장식은 그 이전의 구조 재료였던 목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면서 이전 시대의 구조재가 장식으로 물러선다는 것이다. 회벽 마감 뒤에 숨어서 구조를 담당하던 벽돌이 요즘에 가장 장식적인 재료로 표상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소호의 주철 기둥이 당시로는 가장 경제적인 재료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장식적이며 낭만적인 재료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맥을 같이한다.

쿤스트할레 베를린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쿤스트할레 베를린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가 보자. 컨테이너는 현대의 대량생산을 대표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전 시대의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생활을 매개하는 것이었다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테크놀로지는 소통의 문제와 더 가까워져 있다. 즉, 기계미학은 대량생산과 그 결과물인 공업생산품을 미적 대상으로 삼지만, 컨테이너 빌딩은 생산보다는 재생산, 즉 복제의 테크놀로지라는 점에서 시뮬라크르적이다. 따라서 컨테이너가 표상하는 것은 원래의 의미가 탈각된 하나의 스타일로 남게 되며 원래 목적이나 원본의 부산물이 아닌 목적 자체로 전환된다. 예전의 초가집이 농업이라는 산업형태와 느슨하게 연결되어있을 뿐 그 생산방식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인 건축형태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때 우리나라는 컨테이너 최대 생산국이었다. 구하기 쉬운 재료를 적정기술로 건조하는 것이 당대의 건축이라면 컨테이너 빌딩은 초가집처럼 우리의 전통건축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백년 후, 민속촌에서 컨테이너 빌딩을 보며 향수에 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포스코리포트는 해당 분야 전문가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포스코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건축가. 주요 저서:'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못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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