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글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이경훈 교수
l 20세기 건축과 도시에 영향을 준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Less is more!
잡지나 광고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이제는 진부해진 역설적인 구호의 주인공은 독일태생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이다. 사실 이 말은 19세기에 시인 브라우닝의 싯귀절이었고 건축가 중에서도 그가 최초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의 작업이 그 의미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그의 생애 내내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건축과 도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등장한 것은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를 통해서이다. 박람회는 세기초에 등장한 새로운 기술과 재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본격적으로 자동차와 전기가 보급되고 건축에서는 강철과 판유리가 생산되기 시작하던 변혁의 시기에서 유럽 각국의 선진기술을 과시하는 중요한 장이었다.
여기에 독일은 1차대전 패망이후 산업국으로 재기해야했고 이를 세계에 알릴 중요한 계기였으므로 ‘쎈 것’이 필요했다. 독일의 고전적인 전통을 이으면서도 현대성을 과시해야 했다. 바이마르 독일공화국은 스케치를 끄적이다 가끔 전시회를 여는 정도의 무명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지명했다.
l 현대 건축의 원형이 된 Less 건축의 시작!
바르셀로나 엑스포의 독일관은 별다른 전시가 없는 작은 전시관(pavilion)이었는데 당시로서는 기괴할 정도로 단순했다. 최초로 “Less” 건축을 세상에 선보인 순간이었다. 부유하는 지붕과 자유로운 벽면, 그 사이를 흐르는 광선이 전부였다. 건조한 공간에 콜베의 청동조각이 작은 연못에 반사된 빛을 받아 유일한 곡선을 만드는 정도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지막한 지붕이다. 지붕은 지탱하는 벽이나 기둥과는 상관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투명한 유리가 내외부를 가르고 있기에 지붕은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다. 벽들은 모두 경쾌하고 가볍게 보여서 건물을 지탱하는 역할에서 해방되어 보였다. 대신에 날렵하고 미끈한 십자형 스테인리스스틸 기둥이 육중한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어찌나 정교하고 우아하던지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이 기둥을 소장품의 목록에 넣을 정도였다.
이후로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주로 활동하던 시카고에 대규모 건축물들을 남긴다. 말년에는 뉴욕에 시그램빌딩이라는 걸작을 남기기도 하고 베를린에는 국립미술관을 건축하지만 바로셀로나 독일관의 변주이거나 조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건축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들어난다. 이후로 독일관은 미스 자신 뿐 아니라 전세계 도시에 교본이나 모범답안처럼 복제되는 현대건축의 원형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l 미스 반 데어 로에, 강철을 건축의 영역으로 불러내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독일관을 통해 진정으로 성취한 것은 강철에 형태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나무나 돌 같이 전통적인 건축재료들은 수천년의 경험적, 의미론적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상적인 형상이나 다루는 방식이 정립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강철은 낯선 재료이며 드러나지 않는 숨은 재료이며 비인간적 기계문명의 상징이었다. 철은 기계의 재료이며 공장에 속하며 산업의 영역에 있었다. 미지의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의 양가적 감정은 철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철을 돌처럼 전통 문양으로 장식해보기도 하고 식물문양으로 휘어보기도 했으나 본질과는 다른 헛된 실험들이 되풀이 될 뿐이었다. 이때 미스는 담대하게 강철에 맞는 형태는 ‘형태없음’이 정답이라고 외치고 나선 것이다.
형상과 질료의 관계를 고민하는 서양의 물형론적(holomorphic) 전통의 완성인 동시에 전복이었다. 영혼이 육신을 얻는 것이었으며 그 육신은 less이자 순수기하이며 미니멀리즘이었다.
l 강철로 생명을 얻은 ‘Less is more’ 정신
철제기둥보다 더욱 상징적이며 더욱 극적으로 “less”를 보여주는 것은 전시관에 놓인 작은 의자였다. 역시 미스가 디자인했고 박람회의 이름을 따서 ‘바르셀로나 체어’라 불리는데, 이 의자 하나가 그의 모든 건축적 성취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당시에 강철로 가구를 만드는 것은 그것도 의자를 만드는 것은 도자기로 만드는 것만큼 생소한 일이었다. 모름지기 의자란 나무를 빈틈없이 조각하고 끼워 맞춰 천으로 만든 쿠션을 얹은 것일진대, 너무도 단순한 이 철제의자는 모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엉덩이와 체중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놓은 형상이었다. 마치 이데아의 세계에 있을 법한 의자의 원형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Less is more”라는 구호가 육신을 얻은 것이며, 비로소 20세기가 막을 올렸다. 현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 바르셀로나 체어는 가구뿐 아니라 디자인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매끈한 강철 프레임 위에 놓인 두툼한 가죽은 철에 온기마저 불어넣어 훗날, 미스 건축의 ‘건조함’, ‘차가움’ 같은 비판에 훌륭한 방패가 된다.
바르셀로나 독일관은 박람회 직후에 철거되어 흑백 사진으로만 세상을 떠돌다가 건축가들의 청원에 의해 1986년에 같은 자리에 재건축 된다. 바르셀로나 체어 또한 제자리에 놓여지게 되고, 세계는 오십년을 뛰어넘은 미스 건축의 현대성에 다시 한번 경탄하고 있다.
몬주익 평원을 내려다 보며 빛나는 유리상자와 그 안의 철제의자가 외친다. Less i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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