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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힌남노의 여파로 불 꺼진 포항제철소를 바라보며…

불빛이 사라진 포항제철소를 바라보며 ①

[기고] 힌남노의 여파로 불 꺼진 포항제철소를 바라보며…

2022/09/20

※이 글은 포스코 본사에 근무하는 어느 포스코 직원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2022년 9월 6일 오전 6시,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떴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카톡, 텔레그램 등 SNS에 수많은 메시지들이 올라와 있었다는 점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메신저를 열어본 후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겼다. 반세기 넘게 우리 곁을 지켜온 포항제철소는 늘 강인한 아우라를 내뿜는 마치 신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지난 수십 년간 태풍은 물론, 심지어 진도 5.4가 넘는 강력한 지진까지 견뎌낸 제철소였기에, 이번 태풍 또한 당연히 큰 피해 없이 잘 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재난 영화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분명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인정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해온 거대하고 강인한 존재가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폐허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현실이.

당장 현장에 달려가 내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당일 오전 제철소로 향하는 형산대교는 태풍 피해로 인해 진입도로와 기반 인프라에 큰 피해를 입어서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서 피해 현장의 적나라한 상황들이 공유되었고 심지어 포스코 본사 건물 또한 태풍 피해를 입어 전력이 끊기고 로비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형산강 이남에는 제철소에서 가까운 냉천이 범람하여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다음날 도로에 물이 빠진 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제철동으로 피해 복구 지원을 나갔다. 제철소는 물론이거니와 제철소 주변 도로와 도시는 흡사 러시아로부터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전쟁터를 떠올리게 할 만큼 처참했다. 포스코 대로변에는 믿기 힘든 광경들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뒤집어져 있거나 다른 차 위에 올라가 있었고, 일부는 토네이도에 휩쓸렸던 것처럼 나뭇가지에 걸려있기도 했다. 제철소와 주변 도로는 온통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고 온갖 시설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하층은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충격의 연속으로 인해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퇴근 후 제철소 맞은편에서 불 꺼진 포항제철소를 바라보았다. 365일, 24시간 꺼지지 않고 가동되던 제철소가 멈춰서 있는 모습을 마주한 순간 무언가가 가슴 한 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마치 한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신 부모님께서 갑자기 몸 져 누우셨을 때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황망함이 휘몰아쳤다.

태산같이 늘 그곳에 있었던 포항제철소였기에, 막상 차갑게 식어서 멈추어 선 모습을 보니 직원으로서, 포항시민으로서,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새삼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졌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포스코와 포항시가 다시 예전과 같이 한마음 한 뜻으로 합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3주가 지난 현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제철소를 집어삼켰던 물은 거의 다 빠졌지만 진흙으로 뒤덮여 만신창이가 된 설비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역대급 위기를 맞은 가운데 수많은 직원들과 지역사회가 대동단결하여 단 3주 만에 그 큰 제철소 내의 모든 전력을 복구하고 모든 고로가 재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모진 평지풍파를 겪어온 포항제철소가 다시 한번 그 저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창립 이래 최고의 위기일 수도 있는 이번 사태를 잘 극복하여 다시 한번 산업의 쌀을 풍성하게 지을 수 있는 더욱 강건한 포항제철소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의 위기가 새로운 포항 신화의 시작이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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