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목포의 한 조선소. 태아의 탯줄을 자르듯, 선박 고정용 밧줄을 손도끼로 자르는 도끼의식과 함께 두 척의 배가 이날 새 이름을 얻었다. ‘HL에코‘호, HL그린’호. 세계 최초의 LNG추진 대형 벌크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18만 톤급 선체의 거대한 위용을 선보인 두 배는 포스코가 기존의 선박을 대체하여 선제적으로 도입한 친환경 원료 전용선이다. 두 배의 LNG 연료탱크에는 포스코가 최초로 국산화한 9%니켈강이, 선체에는 포스코 후판 4만 2천 톤이 사용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호주를 오가며 철광석과 석탄을 제철소에 실어 나르게 된다.
★ 여기서 잠깐! LNG추진 벌크선?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자동차는 연료나 용도에 따라 차종을 구분하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선박의 분류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는 배에 실어 운송하기도 하고, 연료로서 배를 추진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배 이름에 LNG가 들어가는 순간 더 헷갈리기 마련. 그렇다면, 얼마 전 수능 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마음으로 아래 문제를 풀면서, LNG선박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Q. 다음 LNG 선박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으로 고르시오.
ⓛ LNG운반선 – LNG의 주성분인 메탄(CH4)을 기체 상태로 운송하는 선박
② LNG추진선 – LNG를 추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③ LNG추진 컨테이너선 – 화물을 컨테이너에 담아 운송하는 화물선 중 LNG를 추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④ LNG추진 벌크선 – 화물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수송하는 화물선 중 LNG를 추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주요 화물: 광석, 석탄, 곡물 등)
※ 오답 노트
LNG는 메탄(CH4)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저장과 운송을 위해 액화시킨 것이다. -162℃의 상태로 냉각하여 액화하면 부피가 1/600로 압축되기 때문에 LNG 운송은 기체가 아닌 액체 상태가 더 편리하다. 따라서 ‘기체 상태로 운송’한다고 한 1번이 오답!
l 천연가스 황금시대(Golden Age of Gas)의 도래
지난해 전 세계 LNG수요는 전년 대비 12.5% 증가한 3억 5,900만 톤으로, 미국의 석유가스회사 Shell은 2040년 LNG 수요가 7억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NG의 수요를 견인하는 키워드는 바로 ‘친환경’. 특히, 올해부터는 유엔소속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규정을 맞추지 못하는 선박은 회원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때문에, 마치 자동차업종에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가 각광 받듯, 조선업에서도 LNG추진선과 같은 친환경 선박이 주목받고 있는 것.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올해 8월 발표한 ‘新造(신조) 발주 집중될 친환경 선박분야 경쟁현황과 향후 전망’ 에 따르면 LNG추진선 건조 규모는 2020년 20조 원에서 5년 만에 6배 이상인 130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9년까지 발주될 선박은 2,500~3,000척으로, 2030년이 되면 국내 건조되는 선박의 60%가 LNG추진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10년 전,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연차보고서를 통해 처음 언급한 ‘천연가스 황금시대(Golden Age of Gas)’가 다가오는 저탄소 시대에 발맞춰, 바다 위에서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l LNG추진선은 왜 친환경일까?
LNG는 기존 연료 대비, 황산화물 99%, 질소산화물 90%, 이산화탄소 30%를 배출 저감하는 효과가 있는 친환경 연료다. 벙커C유와 대등한 수준의 연비에, 가격 또한 저렴하다. 특히 올해는 공급확대와 코로나19로 인한 에너지 수요 위축으로, 한때 석탄보다 가격이 저렴해지기도 했는데, 동북아 가격 지표인 JKM(Japan Korea Marker)기준으로, 3월 말 천연가스 거래 단위인 *1MMBTU(Million British Thermal Unit)의 가격(2.43달러)이 같은 열량의 호주산 석탄 가격(2.56달러)을 밑돌았을 정도.
*1 MMBTU: 질량 1파운드의 물을 화씨로 1도 올리거나 낮추는 데 필요한 에너지양으로, 일반적으로 LNG 측정 기본단위로 쓰인다.
특히, IMO2020에 따라 올해부터 선박 배출가스의 황산화물의 양을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에, LNG연료 사용이 더욱 장려되고 있다. 물론 LNG를 쓰지 않고 이 기준을 충족할 방법은 있다. 연료를 바꿔 황 함유량이 낮은 저(低)유황유를 쓰거나, 벙커C유와 같은 기존 연료를 그대로 쓰되 배출 가스에서 황을 제거하는 탈황설비(스크러버)를 달면 된다. 그러나 저유황유는 원료가격이 높아 선박운영비를 높일 수 있고, 탈황설비는 설치비용이 높은 데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공간에 제약이 있을 경우 선박에 설치가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탈황설비 장착 선박을 제한하기도 해 확산에 한계가 있는 상황. 이에, LNG와 중유를 이중연료로 하는 듀얼퓨얼(Dual Fuel, DF)엔진을 장착한 ‘친환경 LNG추진선’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꼽히나, 배를 새로 건조하는 데는 많은 투자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다.
포스코가 두 척의 LNG추진 원료선을 도입하는 데에도 꼬박 2년이 걸렸다. 2018년 6월, 해양수산부•포스코•에이치라인•KOGAS간 『친환경 LNG 추진선박 발주 위한 업무협약서』 체결한 이래, 그해 12월부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건조를 시작, 정확히 2년만인 지난 11일 명명식을 연 것이다. 이로써, 포스코는 전체 원료운반선 중 절반 이상인 20척은 지난해까지 탈황설비를 장착하고, 나머지 원료선은 LNG와 저유황유를 사용함으로써, 바다 위에서도 저탄소, 친환경 정책에 동참하고 있다.
l LNG추진선! 한국이 최고인 이유
올 한해 세계 조선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카타르 LNG 프로젝트. LNG생산량 세계 1위 카타르가, 앞으로 LNG 수요가 증가할 것을 예상, 연간 7,700만 톤인 기존 생산량을 2027년까지 1억 2,600만 톤으로 증산할 것을 계획하고 올해 대규모로 LNG운반선을 발주했다. 무려 27조 원, 1척당 2천억 원에 달하는 선박이 최대 120척 발주될 것으로 예상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이 수주전에 한중일 3국이 뛰어들었다. 결과는? 한국 23.6조 원, 중국 3.5조 원, 일본 수주 실패. 한국의 압승이다.
올해 6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카타르국영석유회사인 카타르 페트롤리엄(QP, Qatar Petroleum)과 협약을 맺고 2027년까지 LNG운송선 건조 슬롯 100척을 예약했다. 사실 올해 4월, 카타르 LNG운반선 첫 수주물량 16척을 중국이 따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그동안 한국이 주도해왔던 LNG운반선 시장을 이제 중국에 내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국 대륙의 LNG 구매력을 카타르가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수주량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으로부터 탈환한 지 올해로 3년 차. 여전히 중국이 한국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지만, 한국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LNG추진선 건조 기술이다. LNG운반선은 LNG추진선이니, 카타르 수주전의 성과는 어쩌면 예견된 일인 셈.
LNG추진선 분야에서 한국이 앞서 나가는 이유는 풍부한 대형 선박 건조 경험과 노하우와 같은 종합경쟁력이 우수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LNG추진선의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요소기술경쟁력 분야用 기자재인 ‘연료탱크’, ‘엔진’, ‘연료공급시스템’에서 한국이 확고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솔린차가 전기차로 변하듯, 연료의 변화에 따라 선박의 엔진도 변하고 있는데, 국내 조선사는 중유와 LNG를 이용하는 듀얼퓨얼엔진 뿐만 아니라, 이보다 연비가 10% 우수한 최신형 엔진까지 LNG추진선에 적용한 경험이 풍부한 데다, 독자적인 연료공급시스템까지 구축하고 있다. 연료탱크 역시 LNG운반선과 동일한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및 건조 기술을 갖고 있다. 이번에 포스코 원료선으로 도입된 세계 최초의 LNG추진 대형 벌크선 HL에코호와 HL그린호에는 전량 포스코 강재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연료탱크에 ‘포스코 9%니켈강’이 최초로 적용된 점이 눈길을 끈다.
l LNG추진선 연료탱크, 포스코는 출항 준비 완료!
9%니켈강은 LNG 저장탱크 제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강종으로, 영하 163도의 극저온에서도 연료탱크가 깨지지 않는 우수한 강도와 충격 인성을 유지한다. 이 강종은 과거에 해외 특정 철강사들만 생산할 수 있다 보니,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9%니켈강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왔다. 포스코는 1993년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후, 품질 안정화를 거쳐 2007년부터 소재 생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 최근에는 우리나라 조선 3사와 함께 LNG 탱크 기술 개발에 협력해 왔다. 그리고 지난 11일 포스코는 세계 최초의 LNG추진 대형 벌크선 연료탱크에 당사의 9%니켈강을 적용함으로써, 최초의 소재 국산화를 이뤄낸 것이다.
원래 선박용 극저온 LNG 탱크 소재는 IMO규정에 따라 니켈합금강, 스테인리스강, 9%니켈강, 알루미늄합금 4종류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는데, 2년 전 추가된 소재가 하나 있다. 주인공은 바로, 포스코가 독자 개발한 고망간강. 9%니켈강은 원소재인 니켈의 가격이 비싸고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에 비해 망간은 가격이 니켈보다 30% 이상 저렴하고 매장량이 풍부해서 수급 안정성이 높다. 이미, 포스코는 2017년 12월, 당시로써는 세계 최대의 LNG 추진 벌크선이었던 5만톤 급 내항선 그린아이리스호의 연료탱크용으로 고망간강을 공급한 바 있다.
물론 LNG를 과도기적 연료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올해부터 시작된 ‘IMO2020’이, 2008년 대비CO2 배출을 40% 줄이는 ‘IMO2030’를 거쳐, 70% 줄이는 ‘IMO2050’까지 가게 되면 수소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탄소 제로화 사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 최소한 향후 10년, 아니 30년을 대표할 친환경 선박이 LNG추진선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바다 위에 펼쳐지는 천연가스황금시대, 그 여정에 포스코의 친환경 강재가 함께 항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