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도서관 본관은 1974년 이승우의 설계로 1975년 완공됐다. 당시의 모더니즘을 반영해 지어진 이 건축물은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잘 쓰였다. 국내 ‘최고’, ‘최대’, ‘최다 장서’ 같은 여구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오랜 세월 수많은 학생들이 글을 읽으며 진리를 탐구해온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실내 오픈스페이스나 디지털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등 도서관에는 더 많은 역할이 기대되었다. 서고나 열람실의 공간이 부족해지기도 했다. 이에 2013년, 중앙도서관의 증축동인 관정관을 짓게 됐다.
기둥 없이 넓게 열린 실내 공간
모든 건축물이 그러하듯, 관정관 설계에도 몇 가지 제약 조건들이 있었다. 건물을 중앙도서관 본관과 직접 연결해야 했고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 사이 중앙계단, 또 중앙도서관 동쪽에 난 ‘걷고 싶은 길’을 살려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도서관과 약학대학 사이 좁은 부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중앙도서관 뒤로 훤히 펼쳐지는 산과 하늘을 가리지 않으려는 의도로(관악산의 건축고도 제한도 지켜야 했다), 고층으로 계획한 초반의 여러 가지 안 대신 ㄱ자 모양으로 중앙도서관의 우측면과 상부를 덮는 꽤 얌전한 매스(덩어리. 건축에서 일정한 규모를 갖고 공간을 규정하는 실체)로 설계 최종안이 결정됐다. 중앙도서관 옥상 위로 건물의 일부를 띄워 마치 중앙도서관에 새로운 층을 덧댄 듯한 수평적 해법이다.
실내 공간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길이가 165미터에 이르는 기다란 형태를 취했다. 6, 7, 8층의 평면도를 살펴보면 엘리베이터실 근처 코어에 자리한 기둥을 제외하고는 중앙부를 지나는 기둥이나 벽이 없다. 6층은 멀티미디어플라자, 정보검색실로 구성돼있고 7, 8층은 열람실인데 학생들이 주로 머무르는 이러한 공간에서 높은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무려 112.5미터에 이르는 길이 방향의 트러스(선형의 부재를 삼각형 그물 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시키는 방식)를 6층과 7층 사이, 7층과 8층 사이 2개 층 양쪽 코어 메가 기둥에 걸친 구조다. 이런 대규모 건축물에 길이 방향의 장스팬 트러스구조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관정관의 철골 트러스에는 건축용 초고강도강재인 HSA650(High performance Steel for Architecture 650)강이 쓰였다. 항복강도 650MPa, 인장강도 800MPa 급 강재인 HSA650은 1㎟ 면적으로 80㎏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 HSA650은 포스코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신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우수한 소재와 시공기술이 건축에 숨을 불어넣은 사례인 것이다.
하늘과 산의 빛을 담는 파사드
설계를 맡은 유태용은 이 프로젝트에서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빛’을 주된 개념으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빛을 투영하는 작은 건축요소 하나를 정하는 데서 설계를 시작했다. 기존 중앙도서관의 입면에서 발견한 단위를 반영한 이 요소를 연속적으로 반복해 전체를 이루도록 했다.”고 말했는데, 건물의 파사드(건축물의 외관)를 보면 이러한 의도가 읽힌다. 스틸커튼월과 아노다이징 패널(알루미늄 표면을 산화시키면서 피막을 형성한 도금 패널)이 교차하며 반복되는 외벽이다. 패널은 여름 햇볕이 강하다는 것을 고려해 16도로 기울였다. 이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기도 하고 내부로 빛을 들이기도 한다. 사다리꼴 모듈로 전체를 일관되게 덮은 데서 기존의 건축과 주변 환경을 존중하려고 한 태도가 엿보인다.
[Architect’s Pick : 이노빌트 스틸커튼월]
커튼월은 현대 건축에서 전혀 특이한 게 아니지만 관정관처럼 층고가 4.5미터로 높은 건물에서는 구조적 이유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관정관과 같이 비정형적인 다자인으로 외벽을 구현하고 싶다면, 스틸을 소재로한 커튼월이 가장 적합하다. 관정관의 커튼월은 유리와 아노다이징 판을 잡아주는 프레임이 가늘고 깔끔한데, 여기에 포스코 포스맥을 소재로 한 이노빌트 스틸커튼월을 사용했다. 동트는 시간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반짝이며 빛을 반사시키는 파사드가 관정관의 위압적인 느낌을 덜어줄 선택이었다. 코어가 양옆으로 배치돼있고 중간이 길게 트여있어 사면으로 열린 듯한 넓은 실내 공간, 그리고 프레임의 두께가 가늘고 마감이 우수해 외관에서 극대화되는 유리와 아노다이징의 리듬감. 그것이 서울대학교 관정관 건축의 핵심이라면 그 바탕에 이노빌트 스틸커튼월이 있었다.
인공물인 건축을 통해 오히려 자연을 잘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건축가들에게 자연을 담는 것은 언제나 큰 숙제다. 차갑고 낯설게 보이는 첨단 기술과 새로운 재료가 오히려 건축에 바람과 물과 햇빛과 초록을 가져다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관악의 풍경을 담고 관정관의 커튼월이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