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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스틸이 부풀면, 따뜻한 행복이 된다 [Volume of Happiness]

차가운 스틸이 부풀면, 따뜻한 행복이 된다 [Volume of Happiness]

2019/08/14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날,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 앞에는 거대한 알루미늄 호일 풍선이 놓여있었다. 화랑 앞을 지나는 사람은 이 풍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지났다. 풍선은 마치 거울처럼 사람과 자동차, 나무와 하늘을 비췄다. 그런데 얇은 알루미늄 호일 풍선처럼 보이던 이 거대한 물체, 사실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품이다. 둥근 행복의 메시지를 스테인리스에 담아낸 조각가 박상숙을 포스코 뉴스룸이 만나봤다.

| 풍경과 나를 ‘담은’ 스테인리스 스틸

“사실 스테인리스는 차갑고 무겁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뜨겁게 만들어 동그랗게 부풀릴 수도 있어요. 이러한 양면적 특성이 굉장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만난 조각가 박상숙은 이번에 발표한 신작 ‘Volume of Happiness’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지난 7월 3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 개인전에서 스테인리스 스틸로 완성한 작품 시리즈를 선보였다. 스틸이라는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소재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형태와 의미로 완성한 작품들이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공동체, 가족 등 인간관계에 갈등이 너무 많잖아요. 이러한 시대적 문제점들을 표현해야겠다고 느꼈고, 딱딱하고 직선적인 것보다 따뜻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을 작업으로 이끌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작가가 많은 소재 중 스테인리스 스틸을 선택한 이유는 남다르다. 그동안 건축을 테마로 조각을 해온 작가에게 석조(石槽)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재료였다. 돌이 건축에 직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소재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은 경직성이 강해 구조적인 면에서는 표현하기 좋으나 주변과의 융화나 상상력에 의한 변형의 욕구를 충족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스테인리스 스틸은 반사면에 투영되는 주변 풍경과 그 변형, 기하학적인 선과 자연스러운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소재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녀는 평소 ‘인간의 실존 문제’를 주제로 작업해오면서 건축물에서 드러나는 생활방식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모습과 감성에 대해서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 시리즈는 직선적인 구조가 주를 이루었던 이전 작업과는 달리 곡선적인 볼륨이 눈에 띈다. 이는 집, 계단, 의자 등 건축 내외부 구조를 모티브로 형상화한 작품들로, 부풀어 오른 스테인리스 작품들의 형태는 건축 공간 속 인간적인 만남이 융합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

| 부식에 강해 작품 보존에도 용이한 스테인리스 스틸

작가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스테인리스 304계열이다.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다루기 쉬운 재료를 선택하는 편이다. 처음 스테인리스로 작업을 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둥글게 부푼 면을 만들기 위해 판을 잘게 잘라서 두드리고 용접해 붙이고 샌딩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워낙 많은 공이 들었다. 그러다가 수압으로 스테인리스 판을 부풀리는 특허를 가진 업체를 알게 됐다. 그 업체에 필요한 크기의 부풀린 판을 주문하고, 부분별로 부푼 판을 수급하여 용접으로 이어붙이고, 샌딩(sanding)과 재료 표면을 연마해 광택이 나도록 하는 버핑(buffing) 작업은 직접 하고 있다. 이화여대 겸임교수로 재직 당시 용접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스테인리스 작업이 완성된 후에는 일부 면에 자동차에 칠하는 우레탄 페인트나 캔디 페인트를 칠해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업을 하는 조각가가 생각하는 STS의 장점은 무엇일까?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내구성을 1순위로 꼽았다. “스테인리스는 매우 강한 소재이면서 부식에도 강하여 작품을 보존하는 데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용접이나 광택 작업을 할 때 어려움이 많지만 작업을 한 만큼 그 효과가 있어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작가는 3mm 판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용접할 때 열을 가하면 쉽게 변형되기 때문에 형태를 만드는 데 어려움도 마주한다고. 하지만 차가운 느낌의 이 소재를 직접 부풀려 작업함으로써 따뜻한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소재의 매력이라고 소개한다.

| 차가운 소재에 온기를 불어 넣어보자


작가는 그동안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소재로 삼으면서 재료, 형태, 구조 등 형식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변주해왔다. 초기엔 목재와 석재, 철조를 활용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파리로 이주하기 전 목재나 철조를 이용해 인체를 구조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작업에서는 인간을 미화된 모습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신체의 기본 구조를 통찰하여 조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꾸밈없는 인간의 본질적 형태’를 표현했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전 작품활동 기간을 관통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주제를 건축적 모티브와 다양한 재료의 스펙트럼으로 선보인 자리였다. 특히 건물 외부에 설치했던 대형 조각 ‘Volume of Happiness 1809’는 둥글게 부푼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의 빛 반사를 통해 작품 앞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무와 하늘과 같은 자연들을 작품 표면 위에 압축적으로 담았다. 이 작업은 인간의 주변 공간과 인간 실존을 탐구해온 그간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밑면 역시 둥글어서 일정한 힘이 가해지면 움직이기도 하고 위치가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차가우면서 불변하는 형태적 특성을 지닌 스테인리스 스틸에 열을 가해 유동적인 조각으로 완성한 셈. 작품 표면에 온기를 가하면서 인간의 본질적 삶과 행복 추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예술적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에서 박상숙 작가가 선보인 시리즈는 차갑고 날카로운 속성을 지닌 스틸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가만의 방법과 언어로 해석한 둥글고 화려한 조각들은 관람객에게 부드러움과 편안함, 그리고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일반적인 인식을 전환해 완전히 반대의 의미를 발견하며 스틸의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 박상숙 작가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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