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새롭게 탄생한 지는 22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사명을 바꾼지는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3월 15일 사명 변경 20주년을 맞이한 포스코의 민영화 과정과 사명 변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자!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가 되기까지, 민영화 추진 과정
l 1980년대, 정부의 민영화 대상 공기업 1호
포항제철은 1980년대부터 정부의 민영화 대상 공기업 1호였다. 경영실적이 우수했고 성장 가능성이 높았고 시장성이 확실했기 때문에 1988년 주식 일부를 국민주로 공개한 이후에도 민영화 논의는 계속됐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 초기에도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됐으나 포항제철은 대상에서 빠졌다. 포항제철을 수용할 만한 민간기업이나 자본도 많지 않았지만, 경제력 집중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보완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1998년 7월 3일 기획예산위원회가 11개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밝히면서 포항제철 민영화는 급속도로 진행됐다.
l 세계 철강업계의 민영화 흐름
세계 철강업계의 민영화도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신자유주의 이념과 자유경쟁 확산 등으로 공기업 존재 기반이 약해진 유럽에서 영국 브리티시스틸(British Steel), 프랑스 유지노사실로(Usinor Sacilor)가 민영화 흐름을 이끌었다. 뒤이어 남미 철강업체들도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걸쳐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세계 철강업계 민영화는 1980년대 이전 30%에서 1993년 이후 70%를 상회했다. 정부의 민영화 조치로 포항제철도 세계 유수의 철강사들과 같이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리된 선진국형 민영기업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l 1998년 본격적인 민영화의 시작!
1998년 12월 14일 정부 지분 3.14% 전량과 한국산업은행 지분 23.57% 중 2.73%를 DR(Depository Receipts 주식예탁증서)로 매각하는 것으로 민영화가 시작됐다. 1999년 7월 22일에도 한국산업은행 지분 8%가 DR로 매각됐다. 해외투자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반영해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IMF 관리체제에 있던 우리나라의 국가신인도 회복에도 큰 힘이 됐다.
같은 해 12월 4일 한국산업은행이 나머지 지분 12.84%를 장외 경쟁입찰로 매각해 민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했으나, 시장 가격이 매각 희망 가격 15만 7000원보다 낮게 형성돼 매각에 실패했다. 한국산업은행은 2000년 6월 21일 잔여 지분 6.84%를 ADR 형태로 뉴욕증시에 발행했으나, 미국 증시 침체로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한국산업은행의 나머지 지분 매각을 무기한 연기했다. 알짜 회사의 주식을 헐값으로 매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어 2000년 9월 28일 포항제철을 공공적 법인에서 제외함으로써 회사 주식의 동일인 소유한도 3%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9월 29일 한국산업은행 지분 4.6%가 DR로 매각되고, 10월 4일 나머지 2.24%를 포항제철이 자사주로 매입함으로써 3년에 걸친 민영화 작업이 완료됐다.
포항제철의 민영화가 가지는 새로운 의미는 분명히 있었다. 한국산업은행이 대주주인 지배구조에서 지배주주나 과점주주가 없는 선진 지배구조로 바뀜에 따라 정부 보조금 시비 같은 통상문제와 정부 간섭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경직된 공기업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l 주식회사 포스코(POSCO), 사명 변경과 함께 글로벌 기업으로의 재도약
포항제철은 완전 민영화를 계기로 더욱 빠르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포항제철은 민영화를 전환점으로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이를 대외에 천명하는 의미에서 2002년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라는 회사명 대신 설립 초기부터 해외 브랜드로 사용해 온 ‘주식회사 포스코(POSCO)’를 공식 회사명으로 채택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역사와 함께하며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제철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온 포스코가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을 꾀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