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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한국 철강시장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한국 철강시장

2020/08/26

한국은 철강 수출국일까? 철강 수입국일까? 당연히 둘 다 맞다. 수출도 많이 하고 수입도 많이 한다. 당연한 질문인 이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보태자면, “한국은 철강 수출국이자 수입국이 맞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수출 대비 수입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약 3천만 톤의 철강을 수출해 세계 3위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수출 규모의 반이 넘는 약 1천6백만 톤을 수입해 세계 5위의 철강 수입국이 됐다. 특히, 한중일 동북아 3국간 교역에서는 유일한 철강 순수입국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는 한국 철강산업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철강 수출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만 주목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입 철강재에 무방비하게 위협받고 있는 국내시장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2019년 한국 철강산업의 수출입 그래프를 보자.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한 가운데 수입만 증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내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자동차, 건설 등 주요 수요산업의 부진으로 전년비 0.9% 감소, 수출은 글로벌 교역 환경 악화로 0.2% 소폭 감소한 반면, 수입은 전년비 9% 증가했다. 수입재 중에서는 절반 이상(50.6%)을 차지하는 중국산이 12.5%로 가장 높은 증가폭을 보였다.

그렇다면, 국내로 들어온 수입 철강재는 어떻게 유통되고 있을까?

l 수입 철강재 비중 높은 한국 시장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전체 수입 물량 8,498천 톤 중 약 60%인 5,098천 톤을 차지한 판재류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리롤러(전문압연업체)의 수입 비중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은 수입 철강재가 국내로 들어와 조선, 건설, 건재, 강관, 차, 가전 등 실수요가에게 직접 판매되는 비중보다, 재압연되어 어디론가 다시 판매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중국산 수입재를 재압연하여 판매하는 유통경로는 자칫 한국을 리틀 차이나(Little China) 즉, 중국 철강재의 우회수출 기지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 미국 및 EU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을 중국 철강재의 우회수출 기지로 의심하고 우리나라에 무역구제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 철강재를 수출하는 데에서 나아가 지난해 중국 청산강철은 국내에 스테인리스 냉연밀 신설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중국산 철강재 수입 확대는 중국 철강업체가 국내에 직접 진출하는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수입재 방어는 비단 국내 철강시장 보호뿐만 아니라, 원자재를 공급하는 고로밀과 원자재를 외부로부터 조달해 철강재를 생산하는 단압밀 간에 협력 생태계를 구축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고로밀은 국내 하공정 업계의 수익성 유지를 위한 가격 지원 정책을 지속하는 한편, 수입량 감소로 국내 시장에 국산재 수요가 증가할 경우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함으로써 하공정업체에 안정적인 소재 공급을 보장할 수 있다. 글로벌 규제 확산에 따라 철강 수출시장이 축소되더라도, 내수 공급이 확대된다면, 수출 물량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l 한국, 철강 수입 비중 31% … 일본·독일보다 크게 높아

한국은 특히 중국산 철강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이렇게 중국산 유입이 많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일부 철강사의 환경파괴와 같은 불공정성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미국 상계관세 부과 시 보조금으로 판정된 바 있는 중국 정부의 철강 보조금 지원 유형은 국영 철강사의 지분 참여, 출자전환이나 채무 포기 형식의 채무변제 등 매우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일본산 수입도 크게 늘었는데, 내수시장 부진으로 인근 한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산은 7월 기준 열연 가격이 톤당 400달러로 중국산 보다 47달러나 낮게 판매되었다.

국내로 유입되는 수입재의 영향으로 한국 철강사들은 오랫동안 생산 물량을 국내가 아닌 수출로 소화해야 하는 기형적인 수출입 구조가 고착되어 왔다. 전통적인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은 자국의 고품질 국산 소재를 적극 사용해 자국 시장에서 철강 수입 비중이 각각 16%와 10%에 그치는데, 이는 한국의 철강 수입 비중이 31%인 것과 크게 대비된다. 철강 수입 주요국의 수입 규제 조치를 비교해보자.

*주: 수입물량은 EU 28개국 역내 교역 포함, EU 개별국은 수입국 순위에서 제외(2위 독일, 3위 이탈리아 등)
*출처: worldsteel(수입물량) 및 포스코경영연구원 자료 종합

*용어 설명
-AD (Anti-Dumping duties, 반덤핑관세) : 외국의 특정제품이 국내가격보다 싸게 수입돼 관련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수출국의 덤핑에 대하여 수입국이 부과하는 징벌적 관세
-CVD (Countervailing duties, 상계관세, 相計關稅): 수출국으로부터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지원받아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물품이 수입되어 국내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이러한 제품의 수입을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보아 이를 억제하기 위해 부과하는 관세
-Safeguard(세이프가드): 특정 물품의 수입이 늘어나 자국 산업에 중대한 손해가 있을 경우 그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는 일
-MIP (Minimum Import Price, 최저수입가격) 제도: 외국산 제품이 자국 내에 일정 가격 이하로 수입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

다른 국가들의 경우,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 하에 수입재에 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AD/CVD 규제 및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했으며, EU는 미국의 232조 도입 이후 풍선효과로 인한 역내 수입재 급증을 우려해 세이프가드를 시행했다. 심지어 중국조차도 국내시장 보호를 위해 자국 철강사인 청산강철의 인니법인을 통해 생산·수출되는 STS 열연 소재에 대해 지난해 8월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철강은 제조업의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산업으로, ‘2030년 4대 제조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정부의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 달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고품질 국산 소재를 사용해야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산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소부장의 국산화는 절름발이 국산화에 그칠 우려가 있으며, 제조업 르네상스를 꿈꾸는 세계 5대 제조강국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수입 철강재 의존은 지양해야 한다.

또한 철강 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한국은행 산업연관표(‘15년 기준)에 따르면 1차 금속 제조업의 정규직 취업자는 전체 20만 명 중 18만 명, 상용직 취업률은 약 90%에 가깝다. 철강산업은 포항, 부산, 울산, 창원, 광양, 당진 등 우리나라 국토 곳곳에 지역 경제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 지역민 고용 등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저품질 수입재의 사용은 자칫 건축물이 붕괴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져 국민의 안전과 건강, 위생을 위협할 가능성을 높인다. 때문에 독일 등 EU 선진국의 경우 EN(유럽규격) 및 *CE마크 도입으로 규격재 사용을 강제하고, 비인증 제품 유통 시 페널티를 부과하는 한편, 사전 인증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안전, 건강, 환경을 위한 다양한 소비자 보호 조치를 이행하고 있다.

* CE마크(Conformité Européenne Mark): 제품이 모든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 붙이는 인증 마크로, CE마크를 부착한 제품은 소비자의 건강, 안전, 위생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유럽 규격의 조건들을 준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짐.

l 수입재 국내시장 잠식, 수요산업 경쟁력 동반 악화 우려

연강선재 가공산업의 경우, 외국산 제품에 이미 시장이 잠식되어, 국내 철선 생산량이 ‘06년 56만 톤에서 ‘19년 38만 톤으로 십여 년 만에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연강선재로 생산하는 스프링 등 고급 제품의 생산 기반도 약화될 수 있다.

*연강선재란? 탄소(C)가 0.06%~0.40% 정도 함유된 연강으로 만든 선재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철사, 철조망, 못, 철선 등의 제작에 사용되는 원재료다.

고층 빌딩, 공장, 체육관 등의 기둥재와 아파트, 학교, 상가, 교량 등의 기초용 말뚝 등으로 사용되는 건설자재인 H 형강도 지난 2010년 이후 중국산 H 형강 덤핑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며 2015년에는 국내 시장의 30% 이상을 잠식한 바 있다. 1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던 2014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바로 이 중국산 H 형강이었다.

이처럼 수입재의 국내 시장 잠식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산 철강제품들의 생산량이 감소로 이어져 생산 기반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의 경쟁력이 동반 약화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l 국내 철강업계 – 수요산업 간 상생 협력이 해결책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경쟁력 있는 국내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이 협업하여 동반성장을 이뤄내는 것이다. LNG선 화물창에 수입재인 인바(Invar, 니켈, 탄소, 망간의 합금강)강 대신 국산 고망간강을 적용해 조선사는 원가절감을, 철강사는 매출 확대를 이뤄낸 사례나, 수소차에 연료전지분리판용 스테인리스강을 적용해 제품 혁신을 이뤄낸 사례와 같이 수입재 의존을 지양하고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이 협업한다면 2030년 제조업 르네상스는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 수도 있다.

▲ LNG 연료탱크 및 화물창 신소재인 고망간강을 최초 적용한 그린아이리스호(좌),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소차 연료전지 스테인리스강 금속분리판(Poss470FC) 이미지(우)

외부 환경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COVID-19로 인한 팬데믹 사태는 산업계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소재와 물자를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가 소재 공급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COVID-19가 지속되고 외부 공급망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법은 필수 소재의 국내 생산을 강화하여 국내에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갖춤으로써 미래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과도한 수입재 의존을 지양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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