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를 생산하고, 운송한 뒤에는 어디에 쓸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용도는 자동차 연료다. 수소를 연료로 주입해 차량용 연료전지에서 생산한 전기로 구동되는 수소전기차. 마찬가지로 발전소에서 발전용 연료전지나 수소가스터빈을 활용하면 수소로 산업용, 가정용 전기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를 활용하면 ‘전기’뿐만 아리나 ‘철강’도 만들 수 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수소환원제철’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철광석으로부터 철을 생산할 때,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화석연료인 석탄을 사용하지 않으니, 이산화탄소(CO2) 발생도 제로에 가까운 셈.
지난해 골드만삭스는 2050년이 되면 수소환원제철을 포함한 산업용 수소가 전세계 수소 수요의 18%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전용 수소의 예상 수요가 42%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생각보다 높은 편. 물론, 수소환원제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실증, 산업용 수소 단가 현실화, 수소 공급망 구축 등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미래는 끝없이 도전하는 자에게 웃는 법.
그럼, <포스코의 수소 탐구생활> 심화편! 포스코의 끝없는 도전과 혁신이 만들어 낼 ‘2050년 미래의 수소 제철소’로 여정을 떠나보자. 스틸이 CO2 발생없이 생산되는 탄소중립(Carbon Neutral) 제철소.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수소환원제철’을 소개한다.
<포스코의 수소 탐구생활> 시리즈 안내
1교시) 입문편(생산) – 수소, 당신은 스틸의 동반자
2교시) 기본편(운송) – 수소는 스틸을 타고~
3교시) 심화편(활용) – 미래 철강은 수소환원제철로?!
l Good Bye CO2~, 수소환원제철의 작동 원리
수소환원제철은 어떤 원리일까? 바로 이름에 답이 있는데, 수소제철이 아니라 수소‘환원’제철이라고 하는 이유. 즉, 수소(H2)가 철광석(Fe2O3)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Fe2O3 + 3H2 → 2Fe + 3H2O) 이 과정을 통해 물(H2O)과 함께 철(Fe)이 생성되는데, 이를 환원철, 전문적인 용어로는 DRI(Direct Reduced Iron)라고 한다.
그럼 지금은 무엇을 환원제로 쓰고 있을까? 바로 ‘석탄’에서 발생하는 가스, 즉 일산화탄소다. ‘고로’라고 불리는 큰 용광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1500°C 이상의 고온에서 녹이면,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해 철광석(Fe2O3)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반응(Fe2O3 + 3CO → 2Fe + 3CO2)이 일어나는데, 이때 CO2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쓴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우 커다란 변혁의 시작이다. 더 이상 제철소에서 온실가스인 CO2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온 철강생산공정의 많은 부분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50년,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된 제철소는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 변화는 제철소에 고로(용광로)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고로에서 석탄과 철광석을 한 데 녹이는 공정이 없어지니, 고로와 함께 부속설비(소결공장, 코크스공장)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용광로 없는 제철소라니? 그렇다면 수소와 철광석의 환원반응은 어디에서 일어날까? 바로 ‘유동환원로’라는 설비를 통해서다.
철광석을 환원하여 환원철(DRI)을 만드는 설비인 유동환원로는 사실 이미 포스코에 존재하는데, 바로 포스코 고유 기술인 파이넥스(FINEX, Fine Iron ore Reduction) 공정에서 찾을 수 있다.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지 않고, 유동환원로와 용융로라는 설비를 통해 쇳물을 생산한다. 이는 수소환원제철 구현에 가장 근접한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수소환원제철과의 차이점이라면 파이넥스는 공정 중에 발생하는 수소 25%와 일산화탄소 75%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반면, 수소환원제철(HyREX, Hydrogen Reduction)은 수소를 100%를 사용한다는 점.
그런데, 사라지는 설비가 고로만이 아니다? 기존에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용선)은 ‘전로’라는 설비를 통해 정제된 쇳물(용강)로 변환된다. 그런데, 수소환원제철은 유동환원로에서 생산된 환원철(DRI)을 ‘전로’가 아닌 ‘전기로’에 넣어 녹이고 불순물을 정제하기 때문에, 전로도 사라지게 되는 것. 즉, 수소환원제철은 기존의 고로와 전로 자리에 수소유동환원로와 전기로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Q. 고로조업, 파이넥스, 수소환원제철 공정은 어떻게 다를까?
A. 고로조업은 철광석과 석탄을 각각 소결공장과 코크스공장에서 고로에 넣기 좋은 형태로 만든 후, 고로에서 녹여 쇳물(용선)을 생산한 뒤, 이를 다시 전로에 넣어 정제한 쇳물(용강)로 제품을 생산한다. 이때, 환원제는 일산화탄소가 사용된다.
고로가 없는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유동환원로에 넣어 환원철(DRI)를 생산하고, 이를 용융로에 넣어 쇳물(용강)을 생산한 뒤, 이를 다시 전로에 넣어 정제한 쇳물(용강)로 제품을 생산한다. 이때, 환원제는 석탄을 넣은 용융로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75%와 수소 25%가 사용된다.
고로와 전로가 없는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과 수소를 유동환원로에 넣어 환원철(DRI)을 생산하고, 이를 전기로에서 정제한 쇳물(용강)로 제품을 생산한다. 이때 환원제는 수소가 100%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 여겨 볼 점이 있는데, 바로 ‘전력’의 활용이다. 수소환원제철공정이 기존 고로 조업이나 파이넥스와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은 외부로부터 대규모의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고로는 쇳물 제조뿐만 아니라, 후공정에 필요한 열원과 전력 생산을 위한 부생가스를 공급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고로조업시 부생가스가 발생하는 이유는 탄소가 100% 환원에 이용되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 포스코의 경우 부생가스 발전을 통해 제철소 필요 전력의 60% 이상을 자체 조달하고 있다. 그러나 수소환원제철은 수소가 100% 환원에 쓰이기 때문에 부생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곧 제철소의 모든 전력이 필수적으로 외부에서 공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로가 사라진 2050년 수소환원제철소에 쓰이는 전기.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제철소의 두 번째 변화, 바로 높아지는 신재생 에너지 의존도다. 수소환원제철의 기본 개념은 ‘그린 수소’를 전제하고 있다. 이 말인 즉, 유동환원로에 투입되는 수소도, 설비를 구동하는 전기의 생산도, 모두 탄소배출이 없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포스코의 수소 탐구생활> 1편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때문에, 그린 수소를 자체 생산할 수 없는 국가는 앞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일조량, 풍속 등의 이유로 지정학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19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발전단가는 kWh당 163원으로, 이는 중동보다 10배 비싼 수준인데, 그린 수소의 대량 생산지가 호주나 중동 등으로 전망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지난해 3월 글로벌 리서치 회사 블룸버그NEF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50년 그린수소의 글로벌 수요·공급 전망이 지역별로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호주와 중동 지역에의 의존도가 커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향후 이들 지역과의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 참여 및 파트너사 발굴의 중요성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소환원제철과 신재생에너지의 밀접한 관계는 지난해 8월 수소환원제철 시범 공장을 가동한 스웨덴 철강사 SSAB의 하이브리트(HYBRIT) 프로젝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HYBRIT에는 유럽 최대 철광석 생산업체 LKAB뿐만 아니라, 스웨덴 다국적 전력회사 바텐팔(Vatenfall)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
유럽은 이미 신재생 에너지, 수력, 원자력 등 저탄소형 발전 비중이 높다. 지난해 국가수소전략을 발표한 독일은 이미 전체 전력 소비량의 50% 이상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을 정도. 지난달 유럽연합은 신재생에너지(38%)가 화석연료(37%) 발전 비중을 최초로 넘어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더구나 150년 이상의 철강 역사를 가진 유럽의 제철소들은 이미 수명이 다한 고로와 관련 설비가 많고, 연산 100만톤 이하의 소형 설비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에 더욱 적극적인 상황. 반면,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 제철소의 고로는 대부분 연산 500만톤급의 대형인 데다, 유럽에 비해 철강 역사가 짧아 아직 고로 수명이 수십년 이상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l 수소환원제철로 가는 징검다리, CO2 저감형 하이브리드 제철기술 개발중!
내용적이 5500㎥ 이상인 초대형 고로는 현재 전세계에 총 15기. 이중 포스코는 세계 최대 규모인 광양 1고로(6000㎥)를 포함해 총 6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고로의 2/3가 초대형 고로인 것. 또한 고로는 그 특성상 한번 화입(火入)을 시작하면 불이 꺼질 때까지 쇳물을 생산하게 되는데, 1973년 첫 쇳물을 생산하기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는 지금도 가동중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보다 국가별, 제철소별 상황에 맞게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기존 고로에 대한 CO2 저감 활동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포스코는 2017년 12월부터 정부 주도로 진행중인 ‘고로기반 CO2 저감형 하이브리드(Hybrid) 제철기술’ 개발에 참여, 석탄을 수소함유자원이나 *바이오매스와 같은 탄소중립적인 환원제로 일부 대체하는 방안과 철광석을 고로에 투입 전 일부 환원하여 사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식의 CO2 저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기술을 고로에 적용하면 CO2 배출을 기존 고로 대비 약 10 % 절감할 수 있다. 고로기반 CO2 저감형 하이브리드(Hybrid) 제철기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포스코뉴스룸에서 한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바이오매스 : 태양 에너지를 받아 유기물을 합성하는 식물체와 이들을 식량으로 하는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유기체를 총칭한다.
지난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포스코는 단기적으로 CO2 발생 저감기술을 개발하고 저탄소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을 실현하여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포스코는 국내외 철강사들과 함께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공동 연구개발 추진을 모색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최정우 회장은 WSD(World Steel Dynamics) 온라인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그린 스틸 이니셔티브’ 추진과 저탄소 혁신 기술 및 정보 교류 강화 등 글로벌 철강업계의 공동 대응을 제안한 바 있다.
쥘 베른의 공상과학소설에서 걸어 나와 어느새 우리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수소 사회. 그 중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기술력을 바탕으로, 탄소배출 없는 제철소를 향한 도전과 혁신을 멈추지 않는 포스코가 있다.
* 도움말 주신 분:
기술연구원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 저탄소공정연구그룹 신명균 연구위원, 이영석, 고창국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