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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포항제철소여, 우리의 곁으로 하루 빨리 돌아오라

불빛이 사라진 포항제철소를 바라보며 ④

[기고] 포항제철소여, 우리의 곁으로 하루 빨리 돌아오라

2022/09/28

※이 글은 전직 포스코 직원의 가족이 포항제철소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10여 년 전 한창 구직 활동을 할 때 자기소개서에 늘 강조했던 문구가 있었다 – “포스코에서 30여 년간 성실히 근무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신 이후에도 회사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늘 메모장에 적으시던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 직장 동료들의 회식 장소로 인기 만점이었던 우리 집, 회사 체육대회와 야유회의 즐거운 기억들. 어린 시절에는 포항제철소가 그저 아버지의 직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년퇴임을 하실 때까지 30년 동안 근무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아버지의 땀과 노력이 포스코가 지금과 같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하기 때문일까. 학창 시절 통학버스 창 밖으로 매일 포항제철소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거대한 공장의 육중함과 차가움보다는 마치 언제라도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친척 집의 포근한 이미지가 내게 남아있는 것 같다. 늘 포스코 가족이라는 내적 친밀감을 갖고 살았으며, 그 울타리 안에서 누렸던 것들이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면서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

얼마 전 포항시, 특히 포스코가 위치해 있는 남구에 태풍 힌남노의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불행히도 매번 태풍의 길목에 서있는 포항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여지껏 크고 작은 태풍 피해를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단 한 번도 이번처럼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포항시 대부분이 침수되어 출근은 고사하고, 정전, 단수 등 생활과 직결되는 기능들이 마비되면서, 도시 전체가 유령도시가 된 것마냥 황폐화되었다. 태풍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켠 텔레비전에는 흡사 이탈리아의 베니스와도 같이 수중도시가 되어버린 제철소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한동안 포스코가 입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늘이 도와 인명피해는 없었다지만, 최악의 수해로 포스코 제철소가 침수되고, 공장 설비가 흙탕물에 뒤엉켜 마치 폭격을 맞은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곳이 내가 아는 포항제철소가 맞는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위력적인 자연재해였고, 포스코 또한 이를 비켜갈 수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포항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포항에서 가족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기에, 그동안 포스코와 포항제철소의 수많은 많은 직원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 50여 년 간 50만 명의 포항시민들에게 수많은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제공했고, 변방의 작은 어촌 도시였던 포항시를 전 세계적인 제철산업의 대표 도시로 키워냈다는 것은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치 가족사의 한 페이지처럼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태풍이 포항을 휩쓸고 간 지 3주가 정도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포항제철소의 수많은 직원들이 복구를 위해서 굵은 땀을 쏟아내고 있고, 다행히 각계각층에서도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고 한다.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평생 포항제철소의 늠름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온 직원의 자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포항시민으로서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포스코를 새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풍마(風魔)가 매일 저녁 어두운 하늘을 밝게 비춰주던 제철소의 불빛을 앗아간 9월 6일 새벽 이후 며칠간은 마치 포항시 전체가 죽어버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노을이 지는 어스름한 가을 하늘 너머로 늘어서 있는 제철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늘 한결같이 그곳에 서있었던 제철소이거늘, 왠지 그날따라 몇 분이고 멍하게 제철소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린 아들이 차가운 해변을 한참 뛰어놀다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내 품에 안겼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포항제철소는 단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일관제철소나 우리 아버지들의 일터가 아닌, 늘 환한 불빛으로 포항시민 모두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백사장에서 일어나며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듯 이번 고난과 시련도 훌훌 털어내 버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포항제철소를 응원하고 또 응원할 것이다. 어서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하며.

잔잔한 포항 바다 옆 힌남노가 휩쓸고 간 포항제철소의 모습이다.

▲(9월 6일 포항제철소 야경) 지난 6일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지나간 후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인 포항제철소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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