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틀리헤스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의 1기 졸업생, 모더니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Lajos Breuer)’.
마르셀 브로이어는 20세기의 디자인 아이콘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를 발명하고, 강철 가구의 실용성을 널리 알린 인물입니다. 오늘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마르셀 브로이어와 그가 발명한 바실리 의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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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마르셀 브로이어 홈페이지, 가운데 마르셀 브로이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르셀 브로이어는 1902년, 헝가리의 페치(Hungary, Pecs)에서 태어났습니다. 1920년에 바우하우스에 입학한 그는 비주얼 아트와 크래프트 산업 상품에 대한 기술 등 실용적 모더니즘의 근간이 되는 디자인을 공부했는데요.
1919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1936년 나치에 의해 강제 폐쇄되기 전까지 14년 동안 운영된 독일의 디자인 학교입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의 거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가 설립하여 예술 · 건축 · 그래픽 디자인 · 내부 디자인 · 공업 디자인 등의 현대적 디자인 교육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마르셀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 재학 초기에 나무소재를 이용한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지만, 1925년에 바실리 의자를 발명하며 철관을 이용한 디자인의 선구자로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강철 튜브, 즉 철관을 이용하여 만든 바실리 의자는 이후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독일 나치의 탄압으로 1930년대 런던으로 건너간 마르셀 브로이어는 이소콘(Isokon) 회사에서 근무하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후 회사를 설립한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며 실용주의 디자인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그가 발명한 바실리 의자는 지금도 생산되고 있으며, 현대를 대표하는 미술품이자 가구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산업혁명 시대 도시 홍보 포스터
1920년대는 산업혁명이 본격화 된 시대였습니다. 수공업이 기계 작업으로 대체되면서 유럽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합리주의와 효율성만을 바탕으로 한 시장 제품들이 범람하기 시작했죠. 때문에 사람들은 품질과 실용성이 떨어지는 제품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1920년 의자(왼쪽), 쇼파(오른쪽)
특히 가구의 경우에는 지금과 같은 기술로 튼튼한 가구를 대량 생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로 안락한 쿠션과 천, 나무 골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수공예품이었는데요. 실력 있는 장인들이 만든 원목 가구는 품질은 보장되었지만, 제작시간도 오래 걸렸을뿐더러 가격 또한 매우 비싼 편에 속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강철튜브(steel tube)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나슬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 Nagy) 교수가 이끄는 공방에서는 기존 수공예 재료들을 버리고, 실용적인 재료로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산업생산의 주 재료였던 강철튜브, 합판, 산업유리 등을 활용하였는데요. 그 후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5년 공방의 책임자(Meister)가 되며 자전거의 골조를 이용해 바실리 의자를 발명하게 된 것이죠. 바실리 의자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철이 공간 생활 디자인의 필수 재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실리 의자는 대량 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사출성형과 니켈 도금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쇠파이프로 연결된 자전거의 골격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는데요. 부드럽고 깊은 쿠션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던 종래의 개념을 탈피하고, 신축성 있는 탄력 밴드와 강한 가죽, 강철 골격으로 제작한 바실리 의자는 제작과 운송에도 경제적이며 강한 의자로 출시되자마자 호평을 받았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캔틸레버의 예
강철튜브로 만들어진 바실리 의자는 디자인적 측면에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만 고정하고 다른 쪽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는 공학적 기술을 응용하여 디자인과 효율성을 극대화 했는데요. 튼튼한 강철튜브를 사용함으로써 간단한 가공과 최소한의 재료로 튼튼함과 세련된 디자인을 모두 얻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바실리 의자의 명칭은 당시 바우하우스의 교수였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에서 명명된 것인데요. 1925년 나슬로 모헐리나기 공방의 마이스터가 된 마르셀 브로이어가 바실리 칸딘스키에게 선사하며 존경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최초 바실리 의자(Wassily Chair)의 풀네임은 ‘Wassily Chair No.B3.’로 B32, B34, B64 등의 각기 다른 모델명이 붙어 있습니다.
바실리 의자가 가장 높게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산업생산이 가능한 실용적 디자인 제품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생산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형태의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실리 의자에 대한 이야기, 흥미로우셨나요?
철은 현재 디자인 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우리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마르셀 브로이어는 철의 가치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 스틸캐스트에서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철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돌아오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