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3일,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짧은 좌우명처럼 그는강한 신념과 사명감으로 일생을 조국에 바치며불같이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는데요.조국과 국민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 간 그는 참된지도자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남아있습니다.
오늘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리며 그의삶과 업적, 그리고 그의삶속에 담긴 포스코 정신에 대해되새겨 보겠습니다.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억하다!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대한민국을 철강국가로 이끈 우리 시대의 철강왕, 故 박태준 명예회장. ‘철’처럼 강인하고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그의 삶,그리고 조국근대화를 향한간절했던 의지를 지금 바로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포스코의 땀과 결실, 그 도전의 역사!
대한민국 종합제철소 건설은 우리나라 경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포스코의 땀과 결실, 그리고 도전의 역사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던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지 어느덧 46년이 지났는데요. 그 역사의 중심에는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종합제철소 건설은 당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사업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당시 열악한 상황에 자금도, 기술도 없었지만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꿈꾸며 새로운 역사에 도전했는데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 건너가 코퍼스사의 포이 회장과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온 뒤로 제철소 건설은 보다 구체화됐는데요. 이후 코퍼스사를 주축으로 미국, 영국, 서독, 이탈리아 등 4개국의 7개사가 참여해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을 발족됩니다. 그리고 3년 뒤 바로 포스코의 시초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탄생하게 됐죠!
하지만 포스코에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습니다.1969년 2월, KISA가 차관제공 약속을 저버리기로 결정한 것인데요. 포스코는 사라질 위기에 닥쳤지만, 대일청구권자금, 즉 일제식민지 배상금이 신의 한 수처럼 포스코를 회생시켰습니다. 포스코의 종잣돈이된 것이 바로일제식민지 배상금이었기에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든 구성원은 이를꼭 무장할 수 밖에 없는 ‘칼날 같은 윤리’로 삼았습니다.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
명예회장의 이 비장한 정신과 의지는전 건설요원들의 가슴에 가슴을 타고 번져나갔고,이 ‘우향우 정신’은 제철보국 이념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故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철’은 곧 신앙이었고, 그와 건설요원들은 민족의 숙원인 제철소 건설에 목숨을 걸고사명감을 다지며 허허벌판인 제철소 부지 위에서 모래바람과 싸웠습니다.
1970년 4월,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항제철소가 착공됐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날! 1973년 6월 9일 아침 7시 30분, 포스코 직원 및 건설요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한 순간, 용광로에서 ‘뻥’ 하며 황금빛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쇳물이 쏟아지던 순간, 모두 감격에 겨워 손을 번쩍 들어올린 채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후 조강 연산 2,100만 톤을 향한 설비공사로 대역사를 완성한 포스코는 1994년 국내 기업 최초 뉴욕 증시 상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초석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후 포스코는 2000년에 민영화하며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확장해 나갔는데요.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일관제철소 건설하고 주요 해외 거점 및 생산기지에 생산 설비를 증설하며, FINEX나 poStrip과 같은 혁신적인 독자 기술 개발로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故 박태준 명예회장부터 이어져 온 ‘세계 최고’를 향한일류주의,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으로 포스코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며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이끌어 왔습니다.포스코는 여기서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시민으로서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위대함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창업철학과 그 속에 담긴 포스코 정신!
항상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삶과 창업 철학은글로벌 No.1 철강기업으로 우뚝 성장한포스코에게 여전히반추에 반추를 거듭할 만한 핵심 경영 철학으로 포스코인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데요.
지금의 포스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포스코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福樂)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1978년 3월 28일
연수원 특강 중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인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와 민족에게 의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제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과 절박한 시대적 요청 앞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맡게 됐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인연이요 회피할 수 없는 생(生)의 사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직원들에게 민족의 진운(進運)을 바꿀 대역사에 동참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고 독려했습니다.”
1983년 4월 27일
사보 <쇳물> 기자와의 대담 중
“제철소 건설의 대임을 맡았을 때, 세계적 전문기관과 제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지원을 약속했던 KISA(대한국제제철차관단)마저 부정적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오를 다지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이때 실패하면 차라리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이 생겨났는데, 책임정신의 극한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책임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의 포스코가 탄생했습니다.”
1983년 4월 27일
사보 <쇳물> 기자와의 대담 중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영일만에 모였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모든 조소와 부정적 논리를 뒤로하고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손으로 국가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철저한 공인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포스코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인이 된 것입니다.”
1976년 7월 3일
임원간담회 중
“국가로부터 일관제철 사업의 소임을 부여받은 우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국민의 여망에 보답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하는 것은 결코 어디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희생에 바탕을 둔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여 건설한 민족기업입니다. 우리의 모든 정열을 바쳐 신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1977년 6월 6일
임원간담회 중
포스코 정문에는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이 응축되어 있는 슬로건인데요. 포스코의 역사이자 긍지와 자부심인 철강왕 故 박태준 명예회장.
앞으로도포스코는 그의 철학과 창업정신을 길잡이 삼아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더 큰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